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당전쟁 (문단 편집) ===== 반박 ===== 근본적으로 이런 한반도 방기론의 기저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사관]]적인 입장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 일본의 쓰다 소우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는 대표적인 만선사학자로서, [[고구려부흥운동]]은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한편, 신라의 당에 대한 활동은 상당히 축소 혹은 왜곡했다. (《나당전쟁연구》, 이상훈, pp.15). 만선사관에서는 만주사와 조선사가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주사가 규정적, 중심적이고, 조선사는 그에 대해 부속적, 종속적 지위를 가진다. 즉, [[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중간지점에 완성되지 않은 지역이며,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미숙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고, 대륙의 중국과 해양의 일본이라는 두 강국 사이에 끼어 있어서 강고한 독립국을 만들 수 없으며, 항상 강국의 눈치를 보는 [[사대주의]]를 통해 국가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박찬흥, 《滿鮮史觀에서의 한국고대사 인식 연구》). 따라서 한국 고대국가의 역사는 [[만주]] 세력의 남진과 해양의 일본 세력의 북진 속에서 부수적으로 존재한 역사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를 타율성론에 입각하여 서술함으로서 한국의 자주성, 주체성을 없애고자 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식민사학의 신라 통일론에서는 신라의 자주성보다 타율성이 강조된다.(김영하, 《신라의 삼국통일을 보는 시각》 中) 중국 학자가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따라 한국사를 인식한 것은 근대 중화주의의 강화와 더불어 일어난 특이한 변화 중의 하나이다. 왕동령(王桐齡)은 한, 당의 정벌을 강조하여 중국 세력의 남진 구도로 파악함으로서, [[임나]]를 거점으로 하는 일본 세력의 북진과 아울러 중일병진 구도라는 근대 중국의 한국사 인식 체계를 수립했다. [[황옌페이]](黃炎培)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아무런 비판이나 검증없이 그대로 수용했는데, 이는 중화사관과 전혀 모순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상호 상승작용하면서 결합되었다고 한다. (유용태, 《중국인의 '남조선 한성': 20세기 중화주의》 《환호속의 경종 : 동아시아 역사인식과 역사 교육의 성찰》, 휴머니스트, 2006, pp.167~168). 양자는 상호간에 논리적 친화관계를 바탕으로 필요에 따라 서로 차용하면서 상호 전화될 수 있는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진인각은 1920년대의 이러한 왕동령, 황옌페이의 역사 인식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지만, 그들의 사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당전쟁을 바라보는 중•일 학계의 관점은 신라와 당 사이에 발생한 전투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전쟁의 개시 및 종결의 배경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만선사관에 따르면 '반도'의 신라는 '만주'의 고구려보다 열세여야 하고, 중국의 중화사관에 따르면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이라는 세계제국으로 인해 반도의 소국이 '정벌' 당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중국, 일본의 입장에서는 고구려보다 '열등'한 신라가 당시 최강대국 당에게 승리한다는 것을 상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당전쟁 이후 안동도호부가 요동으로 이동하고, 당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은 신라의 역할보다는 토번의 발호라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설명해야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나당전쟁사 연구》, 이상훈,pp.17) 국외연구 중 당이 한반도에서 물러난 원인으로 신라의 역량 강화를 언급한 연구도 있으나 소수의 견해에 불과하며, 대부분 고구려 유민의 저항, 보급로의 제한, 병력의 부족 등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한승(韓昇)은 한반도를 장기간 직접 점령 통치하는 것의 의미가 퇴색되고, 내외의 제약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후퇴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왕소보(王小甫)는 당이 원래부터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었다고 했다. 다만 오해는 말하야할 것이 왕소보 베이징대 교수 같은 경우는 중국 내에서 학파로 따지면 소장파이다. [[동북공정]]으로 인해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로 포함시키려는 시도와는 거꾸로 가고, 동북아역사재단이 낸 '《8세기 동아시아 역사상》'에서는 당과 신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야말로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있어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방기론은 그저 '''자신들이 신라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수주의적 역사 왜곡일 뿐'''이며, 그 논법대로라면 실제로 일본에게 원폭을 투하해서 항복을 받아낸 것은 미국이지, 중국이 아니므로 중국은 [[전승절(중국)]]같은 행사나 열면서 [[중일전쟁]]에서 승전했다고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방기론 자체는 누군가로 인해 주장될 수는 있겠지만, 중국인이 한반도 방기론을 주장하는 것은 그저 자승자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