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레쑤언 (문단 편집) ===== 과연 실화일까? ===== 태국에서는 상세하게 말하나 정작 버마의 연대기는 코끼리 결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버마 측 연대기에 따르면, 두 군대는 1653년 1월 8일 전투를 벌였고 밍기 스와는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역사를 연구한 서양 역사학자 B.J 테르비엘에 따르면, 농 싸라이 전투에 다룬 연대기는 총 10개인데(태국 측 4개, 버마 측 1개, 16세 후반과 17세기 초반의 유럽측 4개, 17세기 후반의 페르시아측 1개) 그중 버마 측 연대기에서도 오직 한 개의 연대기만에 나레쑤언과 밍기 스와의 코끼리 결투를 서술했다고 한다. 1630년대 초반 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인 Jeremias van Vliet에 따르면, 나레쑤언과 동시대 사람이었던 태국인이 나레쑤언과 밍기 스와의 일기토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van Vliet은 이 태국인의 증언을 듣고 코끼리 결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코끼리에 앉아 왕실의 옷을 입은 페구 왕자와 어린 시암 왕자는 자제력을 잃고 군대를 떠나 서로를 격렬하게 공격했다. 시암 왕자는 랜스를 들고 상대방에게 달려가 상대의 몸을 베었고 다른 코끼리를 잡았다." 하지만 테르비엘이 다른 연대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버마 왕자 밍기 스와와 아유타야 국왕 나레쑤언은 정식 결투를 벌이진 않았지만 코끼리를 타고 전투에 참여한 건 맞다고 한다. 그는 밍기 스와가 결투를 벌이는 것에 동의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그 이유는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어온 전쟁을 갑작스럽게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꼴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나레쑤언의 코끼리는 전투 중에 버마군에게 둘러싸이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버마군 전쟁 코끼리 한 마리가 흥분한 나머지 전열을 이탈해 밍기 스와가 타고 있던 코끼리를 공격했다. 밍기 스와가 곤경에 처한 것을 목격한 나레쑤언은 달려들었고(또는 그와 함께 타고 있던 전사들 중 한 명, 어쩌면 포르투갈인), 밍기 스와에게 화승총을 발사해 낙마시켰다." 테르비엘은 나레쑤언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서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고 지적하면서도 그가 기회를 빠르게 이용해 전세를 뒤집었다고 호평했다. 다만 그는 태국의 연대기에 자주 등장하는 나레쑤언의 결투 장면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만들어낸 전설에 불과하다고 단정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