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바테아인 (문단 편집) === 기원 === [[농업 혁명]]이 일어난 이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초승달 지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군 정착민들과 아라비아 사막을 배회하며 목초지와 수원을 찾아 가축들을 이끄는 유목민 간의 분쟁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유목민들은 수원이 메말라서 살기 곤란해지는 건기 때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정착민들을 습격해 식량과 재물을 약탈하는 식으로 생존을 꾀했다.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문명을 세운 [[수메르]]인들을 통합한 [[아카드 제국]]은 이 유목민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 중 하나로 언급되는 이들이 바로 나바투(Nabatu)다. 현대 학계는 이 나바투가 나바테아인의 전신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나바테아인은 [[이스마엘]]의 장남 느바욧의 후예라고 한다. 그는 나바테아인들이 유프라테스 강에서 홍해에 이르는 광대한 사막 지대에 흩어져 살았다고 기술하면서, 이 지역을 '나바테리아'라고 명명했다. 또한 그는 나바테아인들이 아라비아 국가들에 이름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그라프는 저서 《로마와 아라비아 국경: 나바테아인에서 사라센인까지》에서 나바테아인은 본래 메소포타미아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기원전 703년 갈대아인과 이웃 부족들이 [[아시리아]]의 통치자인 산헤립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아시리아군에게 강경 진압당했을 때, 사막으로 도망친 부족 중 하나로 언급된 '나바투족'이 이들의 선조라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는 나바테아인들은 기원전 686년부터 기원전 631년 또는 기원전 627년까지 재위한 아시리아 군주 [[아슈르바니팔]] 치세 때 아시리아 측 비문에서 처음으로 명확하게 등장한다. 아슈르바니팔은 생전에 수많은 정복 전쟁을 단행했는데, 그 중 아라비아의 나바테아인을 정벌하여 그들을 복속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기원전 652년 이복 형제이자 바빌로니아 왕인 샤마시 삼슈 슈무 우킨이 아슈르바니팔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케다르인들이 샤마시와 손을 잡고 서부 아시리아를 침공했으나 아슈르바니팔에게 격퇴된 뒤 나바테아인의 지도자 나트누에게 도피했다. 이후 카다르인과 나바테아인은 아시리아의 서쪽 국경을 번번이 공격했으나 모조리 격퇴되었다. 기원전 259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논 파피루스는 나바테아인들이 게헤란과 미네아 유향을 사들여서 가자와 시리아로 운반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북아라비아, 자우프, 타이마의 퀘다리트 중심지를 통해 상품을 운송했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의 서쪽 끝과 시나이 반도에 살아가던 나바테아인에 대한 고대 언급도 있다. 이들은 홍해를 항해하면서 무역선들을 약탈한 해적들이었다. 그 후 그들은 항구 도시 아일라(오늘날 아카바)를 포함한 몇몇 항구에 기지를 설립했다. [[이슬람]] 시대의 아랍 문헌들은 이라크에 거주하는 나바테아인과 다마스쿠스에 거주하는 나바테아인이 별도로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홍해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의 드넓은 사막지대에 흩어져 살아가던 그들은 [[유대인]]들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바빌론 유수|바빌론으로 끌려간]] 틈을 타 [[에돔]]인들이 유대 지방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공백이 생긴 옛 에돔의 땅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초기에는 주요 도시에서 인접한 산악지대에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거주지는 에돔의 수도 부셰이라에서 12km 떨어진 살레였다. 그들은 산 정상에 천막을 치고 여자와 아이들을 그곳에 있게 한 뒤 도시로 내려와서 상업 거래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에돔인들을 완전히 대체해 그 지역의 주인이 되었다. 그들은 지중해 동부 해안과 아라비아 최남단 사이의 육로 무역을 중개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고, 이를 토대로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하고 여러 도시를 건설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도시를 레켐 또는 레크무라고 불렀다. 나바테아인들의 막대한 부에 눈독을 들였던 [[안티고노스 1세]]는 기원전 312년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에게 그들을 기습 공격하게 했다. 그러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데메트리오스 1세는 나바테아인과 화해한 뒤 부친에게 돌아갔다. 그 후 그들은 아라비아 최대의 도시인 [[페트라]]를 재건하고 중심지로 삼은 뒤 최고 통치자를 선출하기 시작하면서, [[나바테아 왕국]]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