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바테아인 (문단 편집) == 문화 == [[스트라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대 플리니우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 고대 역사가들은 나바테아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여러 기록을 남겼다. 반면에 나바테아인들이 남긴 기록은 [[동로마 제국]]이 다스리던 시기에 기술된 페트라 두루마리 외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나바테아인을 '아랍인'으로 지칭하면서 그들의 생활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랍인들의 나라에서는 적군이 물을 얻을 수 있는 강이나 샘이 없다. 그들에게는 곡식을 심지 말고 열매나 채소를 심지 말며,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집을 짓지 말라는 법이 있다. 그들이 이 법을 지키는 이유는 이러한 것들을 소유한 자들은 권력자들에게 명령받은 일을 하도록 쉽게 강요될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낙타를 기르고, 다른 일부는 양을 기르며 사막에서 살아간다. (중략) 아라비아 펠릭스라 하는 곳에서 유향과 몰약과 가장 값진 향품을 옮기는 자들에게서 받아 바다로 운송하기를 즐기는 자가 적지 않다. 그들은 명백히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위험이 닥칠 때마다 사막으로 달아나서 그곳을 요새로 삼는다. 또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그들이 10,000명의 전사로 구성된 강력한 부족으로 아라비아 유목민들 사이에서 용맹이 탁월했으며, 빗물로 채워진 웅덩이를 판 다음 덮고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남기는 식으로 살아갔다고 서술했다. 이렇듯 초기에는 전형적인 유목민족으로 살아갔지만, 지중해 연안 지대와 아라비아 최남단 지역인 '아라비아 펠릭스' 사이의 중개 무역을 독점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생활 양식이 바뀌었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그들은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고 연회에서 사용했지만, 로마인처럼 술을 과도하게 마시지는 않고 저녁 시간에 11잔 이하로 제한했다고 기술했다. 또한 그들은 말 대신 낙타를 사용했으며, 튜닉 대신 로인클로스(성기와 엉덩이를 가리고 허리띠를 두른 한 장의 옷)를 입었으며, 그들의 왕은 연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정도로 민주적이었다고 한다. 대 플리니우스는 저서 《박물지》에서 이들이 판매한 다양한 종류의 유향, 의약품들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한편, 그들은 무역 경로를 영업 기밀로 간주하고 외부인에게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마스쿠스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나바테아 왕의 아내는 여사제, 공동 통치자 또는 자치 군주를 맡았으며, 여인들은 재산을 상속 및 처분할 수 있었고, 자신의 무덤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소송을 독자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다. 또한 나바테아에서 발견된 동전에서는 남성 군주와 여성 군주가 동등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었다. [[말리코스 2세]](서기 40년 ~ 70년 재위)의 아내인 [[샤킬랏 2세]]는 나바테아 왕국의 마지막 왕이자 아들인 [[라벨 2세]]가 어렸을 때 섭정을 맡기도 했다. 스트라본은 나바테아인들에게 노예가 거의 없었다고 기술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로마 제국에서 주인의 심한 핍박을 받았던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이곳에 은신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외국의 몇몇 인사들은 노예 신세가 될 위험에 처했을 때 나바테아로 망명하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