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일강 (문단 편집) === 아스완 댐 문제 === 이집트의 [[http://ko.wikipedia.org/wiki/아스완_ 댐|아스완 댐]]은 1889~1902년 영국에 의해 건설되었고, 증축 공사가 1910년, 1942년 두 번 더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댐이 된 것은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교묘한 양팔 정책으로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얻어내면서였다. 하지만 1956년 [[중동]] [[중동전쟁|갈등]]으로 지원이 철회되고,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그리고 1964년부터 수원 저장을 시작해서 1976년 수원 한계량을 채우게 되었다. 아스완 하이 댐과 아스완 로우 댐으로 나뉘는 데, 특히 아스완 하이 댐이 규모가 크다. 길이만 3,830m이며 넓이는 기본 구조물로만 980m이다. 중심축의 넓이는 40m, 길이 111m 이다. 최대 11,000m^^3^^의 수원이 '''매초''' 내보내질 수 있으며[* 서울 [[청계천]]의 '''하루''' 수량이 약 4만 세제곱미터이다.] 추가로 5,000m^^3^^의 수원 방출구가 있다. 하지만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로 인해 [[아부심벨 대신전]]과 팔레 신전 등의 문화 유적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유네스코]] 등에서 문화재 구출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신전은 해체되어 옮긴 뒤 다른 지역에서 재조립되었다. 한편으로 아스완 하이 댐이 지어지자 수량 문제로 다른 나일강 인근 국가들과 [[이집트]]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다. 심지어 이집트 대사관이 짱돌로 공격받은 일도 있었을 정도로 감정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나일강은 하류를 관장하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을 놓고 벌어지는 [[수단 공화국|수단]], [[남수단]], [[에티오피아]] 등의 분쟁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남수단에선 백나일강 근처 소유권을 두고 부족 갈등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집트와 수단 공화국 사이의 국경선은 완전히 닫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