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침반 (문단 편집) == 역사 == 나침반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나, 유력한 설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한나라에서 풍수지리적 목적으로 최초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송나라 대에 고도로 발전한 형태의 나침반이 항해에 쓰이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중국에서 아랍으로, 다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이 밖에 인도양 무역을 통해 아랍과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있으며, 중국과 관련 없이 유럽에서 12세기를 전후로 독자적으로 발명되었다는 설이 있다. 후자에 대해 좀더 상세히 서술하자면 약 11세기에 송에서 제대로 된 나침반이 만들어지는데 1190년 유럽의 과학서 《De utensilibus》에 이미 나침반이 언급된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과 중국 사이에는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고 이슬람 세계를 통해 문물이 이동해야 했으나, 정작 중동에서 최초로 나침반이 언급되는 것은 1232년에 들어서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즉, 나침반이 중국에서 아랍, 유럽으로 확산되었다면 그 중간지에서보다 어째서 종착지인 유럽에서 나침반에 대한 기록이 더 이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1270년에 들어서면 유럽에서도 확실히 교차 검증가능한 나침반이 등장하나, 이후의 나침반들은 몽골 제국에 의해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논쟁이 분분하다. 늦어도 13세기에는 구대륙 주요 문명권 전체에 항해용 나침반이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메소아메리카 최초의 문명인 [[올멕]]은 늦어도 기원전 1,000년부터 자철석으로 점을 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풍수지리에 처음으로 나침반을 사용한 중국을 천 년은 앞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낙랑 고분에서 중국과 비슷한 방법으로 점을 쳤다는 식점천지반의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중국의 어떤 기록에서 방위표는 고대 낙랑 지방에서 출토된 옻 지반을 복원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 때인 669년에 [[당고종]]이 승려 법안을 신라에 보내 [[자석]]을 구했다는 기록과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경상도의 특산물로 자석이 기록되었다. 대부분의 특산물은 그 지역명을 따른 것으로 볼 때 나침반의 라(羅)는 신라를 뜻한다는 국내 학자들의 학설로 이를 통해 나침반이란 단어의 어원이 신라의 침반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이것이 나침반이 신라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