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낙서 (문단 편집) == 긍정적인 사례 == 그러나 낙서가 옛 사람들의 생활상과 생각, 여론 등을 엿볼수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낙서가 발굴되면서 그 시대에 대한 새로운 학설이 제시되는 경우도 있다. [[파일:Friends-of-Khufu.jpg|width=400]] [[기자의 대피라미드]]에 새겨진 [[고대 이집트]] 일꾼들의 낙서. '쿠푸의 친구들'이라는 익살스러운 내용이다. 그 외에도 일꾼들이 쓴 걸로 추정되는 낙서에는 [[최저임금|그날 받은 임금이 적다]]고 투덜거린 것, [[퇴사|일이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하며 감독관과 싸운 것, [[파업|임금이나 지급되는 생필품을 더 달라고 시위했다]][* 기록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파업 사례이다.]거나 누구의 어떤 행동이 싫다는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고 이게 해독되면서 국제 고고학, 역사학계에서 난리가 났다. 그동안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헤로도토스]]가 주장하던 대로 노예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는 게 통설이었는데 이게 뒤집어져서 급여나 음식, 생필품을 주고 정식으로 사람을 모집하여 '''고용'''했다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 갈라티아인들이 1000년 전 파라오의 묘벽에 '''사냥한 여우를 여기 바칩니당ㅋ'''하거나 '''누구 누구 누구 여기 왔다감''' 수준의 낙서를 한 사례도 있다. 게다가 이런 낙서를 통해 수천 년 전 그 시절에도 가이드가 돈을 더 받아 챙기려 했다, [[관광지]]는 왜 이리도 [[바가지]]를 받느냐고 비판하는 등의 행태가 똑같았음을 알게 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파일:Onfim's homework-1.jpg]] [[13세기]]에 노브고로드 공화국에 살던 '''[[https://en.wikipedia.org/wiki/Onfim|온핌(онѳиме)]]이란 소년의 학교[[숙제]]'''는 자작나무로 만든 목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가 숙제가 워낙 지루했는지 대부분 낙서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기도 했다. 대표적인 내용이 위의 199번 목피이며 앞면엔 초기 키릴 문자[* [[고대 동슬라브어]]다.]를 외울 목적으로 빼곡하게 써놓았는데 뒷면엔 불을 뿜는듯한 야수와 "나는 괴물이다(Ѧ звѣрє)"라고 써놓은 낙서인데 친구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그린건지 괴물 옆에 상자를 그려놓고 안에 '다닐로야 안녕! — 온핌이(Поклоно ѿ Онѳима ко Данилѣ)'이라고 써놓았으며, 그 외에도 기병이 되어 적들을 무찌르는 내용이나 성경의 시편을 패러디한듯한 “주님 당신의 종 온핌을 도우소서”를 써놓는 등 동심이 넘치는 낙서를 써놓아 먼 미래의 후손들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https://blog.naver.com/icandoit88/30019685464|기사]],[* 2007년 조선일보 기사이나 삭제되어 블로그 글로 대체.]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1082407|링크]] 한국에서는 [[화랑]]들이 '아무개 왔다 감' 형태의 낙서로 유명하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나 [[제천시]] 점말동굴[* 사실 제천 점말동굴은 석기시대 유적으로 더 유명하지만, [[화랑]]들이 순례와서 새긴 글자가 여전히 남아있는 등 신라 때에도 영험한 성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 전국 각지에 화랑의 주요 [[성지순례]] 장소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당시 여러 화랑들이 직접 새긴 이름이 남겨져 있다. 참고로 이 화랑들의 이름을 [[화랑세기]]에 있는 인명과 [[교차검증]]해 보았으나 놀랍게도 전혀(!) 들어맞지 않아 이것이 화랑세기가 [[위서]]라는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천연기념물]] 155호인 [[울진]] 성류굴만 봐도 내부에 무려 1240년전 정도 전, 즉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자를 해석하니 '아무개 다녀왔다. 아무개 구경했다' 형태로, 옛날에도 낙서에 이 레퍼토리는 단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금강산]]을 비롯한 한반도의 여러 명승지에는 이런 식으로 귀족이나 사대부가 자기 이름을 남긴 낙서들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가 되기도 하는데, 이를 제명(題名)이라고 한다. 제명은 당시 [[한자문화권]]에서 상당히 흔한 관습이었다. 추사 [[김정희]]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비문을 해독하고는 기뻐서 비 옆면에 낙서를 새긴 적이 있다. [[윌리엄 로원 해밀턴]]이 [[사원수군]]을 발명했을 때 근처 다리 난간에 칼로 낙서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며 후술하듯이 [[아이작 뉴턴]]도 캠브릿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난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며 학교 곳곳에 자기 이름을 새겨 놓았다. [[성 소피아 대성당]] 2층 내부 대리석 난간엔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후에 밝혀진 바론 [[바이킹]]들의 언어 중 하나인 Norse Futhark [[룬 문자]]로 '''여기 왔다 감''' 이라 적힌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낙서는 Halfdan carved these runes 혹은 Halfdan was here으로 해석되는데 즉, 'Halfdan이 쓰고 감 혹은 왔다 감'이라는 의미라고. 정황상 바이킹 출신으로 구성되어 [[동로마 제국]]에 복무하던 [[바랑인 친위대]]가 기나긴 성찬예배의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새긴 듯한 룬 문자 낙서라고 추측된다. 당사자들은 지루해서 쓴 낙서이지만 [[북게르만어군|고대 노르드어]][* 현대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및 [[아이슬란드어]]의 조상 언어다.]로 된 귀중한 사료로서, [[게르만어파]] 계열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언어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해금강]] 정방폭포 절벽에도 "[[서복|서불]] 다녀감"(徐不過此)이라는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인 프랑스 공주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족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감방 벽에 낙서를 남겼는데,[*내용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랍니다. 수천 번을 부탁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만날 수도 없고, 소식조차 들을 수 없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렇지만 소식조차 알 수 없는 내 어머니, 꼭 살아 남으시길! 아, 나의 아버지! 하늘에서 저를 지켜봐 주세요. 아, 하느님! 부모님을 고통받게 한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 글 역시 그녀의 당시 심경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그밖에 유명인이 한 낙서는 때론 아주 문화재 취급을 당하기도 하는데 유명한 경우가 바로 [[아이작 뉴턴]]. 학창 시절, 그는 책상이나 벽에 이름과 같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가 전설적인 천문, 과학자로 인정받으면서 이 낙서들은 370여 년이 넘게 지난 현재도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낙서하다가 걸려서 욕먹고 벌금을 내던 유명인도 있으니 바로 [[오노레 드 발자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동상에 끌로 "이 사람이 칼로 벌인 것을 난 펜으로 하고 말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가 경관에게 걸려 벌금을 내야 했으며 이 낙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발자크가 지인들에게 밝히지 않았더라면 알려지지도 못했을 일화다. 그밖에 일본에서는 유명한 고승이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에 그려진 [[말(동물)|말]]에 대하여 '''이 그림에 나온 말 잘 그렸다'''라는 낙서를 그림 구석에 한 적이 있다. 그림 주인은 기겁하였지만 이 낙서를 본 일본 왕족이 '''나도 공감'''이라고 그 낙서 옆에 글로 낙서해 버렸다고. 그런데, 오히려 왕족과 고승이 낙서한 그림이라고 하여 되려 그림값이 더 펑펑 올랐던 일화도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소설책 대여점인 세책점에서 대여된 책 뒤에 낙서된 [[음담패설]]이나 책에 쓰여진 불평들을 통해 책 대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당시 독자들의 불만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기도 하다. [[http://explain.egloos.com/5340114|링크]]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들이 낙서를 하면서 일제의 강압적인 지배에 울분을 나타내고 조선 독립의 의지를 표현한 낙서 기록들이 발견되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6/14/story_n_10450342.html|기사]] 또한 이 낙서들로 당시 일제에 대한 조선인들의 여론이 어떠했는지 추론할수있다. [[하시마 섬]]의 징용공 합숙소에는 "어머니 보고 싶어요", "추워요", "배고파요", "죽일 왜놈들아, 죽어서 네놈들에게 저주를 내리겠다!"등 가슴 아픈 한국어 낙서들이 있다. 다만 해당 낙서들은 1965년에 [[조총련]] 쪽에서 제작한 영화 《을사년의 매국노》 촬영 당시 녹음을 담당한 여성 스태프가 연출용으로 새긴 것이며, 실제 당시 징용공들이 새긴 낙서가 아니다. 넓게 보면 동굴의 암각화같은 것도 일종의 낙서이다. [[리오 핀투라스 암각화|낙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되는 사례]]도 있다. 공군 장병들이 출격하는 전폭기의 폭탄에 낙서를 남기는 일도 있다. 주로 'XX를 추모하며(출생일)~(사망일)', '나라를 위하여' 등의 문구지만 이따금 '게임오버', '[[왕좌의 게임(드라마)|왕좌의 게임]]을 못 보게 한 대가를 받아라!', '[[도조 히데키|도조]]씨 스팸이나 처드세요'([[https://www.google.com/imgres?imgurl=https%3A%2F%2Fi.pinimg.com%2Foriginals%2F43%2Fc4%2Fb6%2F43c4b679b3149cd9a9c98d25f90ecc1c.jpg&imgrefurl=https%3A%2F%2Fwww.pinterest.com%2Fpin%2F252834966553125330%2F&tbnid=C8AXO_C_ZvKLtM&vet=1&docid=i_VF5Y-pyCyIlM&w=500&h=459&itg=1&hl=ko-KR&source=sh%2Fx%2Fim|링크]]), '[[오사마 빈 라덴|오사마]], 미국은 건드리지 말고 [[항공폭탄|이거]]나 먹어랏', 'XX가 주는 [[라마단]] 선물이다' 등의 재미나고 재치있는 문구들도 있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익명성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심리를 유용하게 알아볼 수 있었는 자료이기도 하기에, 사회학자, 철학자, 심리학자들의 직접적인 연구 수단으로 널리 쓰였고, [[프로이트]]와 동료학자들도 낙서를 수집해서 인간심리에 대해 연구해 보았다. [[킬로이 다녀감]]도 유명한 낙서 [[밈(인터넷 용어)|밈]]인데, 본래 킬로이라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 해군 조선소 검사관이 체크용으로 하던 낙서가 미군 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서 미군이 주둔하는 모든 지역에서 이 낙서가 남겨지게 되었는데, 미군이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닌 덕에 전 세계에 이 낙서가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