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난중일기 (문단 편집) ==== 어머니 ==== >내가 일찍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니 어머니를 그리워해서 밤낮으로 애쓰고 지성으로 슬퍼했음이 사람을 감동시킬 만했다. >---- > - 다산 [[정약용]], [[경세유표]]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한 구절이 많은데 특히 '어머니께서 무탈하시니 다행이다'라는 서술은 난중일기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표현. 이순신이 일기 속에서 가장 걱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1594년 1월 12일에는 이순신이 잠깐 본가에 왔다가 떠나는데 일기에 자당에 대한 기사가 쓰여있다. 일기 곳곳에서 어머니를 칭할 때, 어머니(母)라는 말 대신 '''천지(天只 : 하늘 천 / 다만 지)'''라는 표현으로 칭하는 부분이 많다. ''''천지(天只)를 떠나서~'''', ''''천지(天只)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이런 식인데 이것은, [[시경]](詩經)의 ''''모야천지(母也天只)'''', 즉 ''''어머니는 하늘이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朝食後 告辭天只前 則敎以好赴 大雪國辱 再三論諭 少無以別意爲歎也。''' >---- >아침밥을 먹은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하교하시길, "잘 가거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거라" 라고 두세 번 타이르시는데 조금도 이별을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1593년 6월 12일 일기를 보면 충무공이 흰 머리를 뽑았다고 기록한 일기가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아들이 늙은 것을 보고 어머니 마음이 상할까봐 그랬다는 의미. 참고로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부모님]]에게 본인의 흰 머리카락을 내보이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는데, 이것이 중장년층 대상으로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 [[염색]] 약이 꾸준한 수요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이후 자당께서 돌아가신 날에는 '어찌 하랴, 어찌 하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서 죽느니만 못하구나'(1597년 4월 19일)라고 지극히 슬퍼하고 있다.[* 이때 나이 90에 가까운 어머니가 여수에서 충청도 아산까지 배를 타고 올라오다가 배 위에서 돌아가셨다. 많은 연세에도 이렇게 무리하신 것은 아들인 이순신 장군이 파직되고 의금부에 잡혀갔다는 소식에 놀랐기 때문으로, 이때 급히 상경하시다 돌아가신 것. 이순신 장군은 이미 함경도에서 근무하던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때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거기에 두번째 백의종군하여 머문 [[초계]]는 모친의 본관이다.] >얼마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바로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 없었다. (...) 일찍 나와서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으며 곡하였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 ><<난중일기>> 1597년 4월 19일 심지어 다음 일기에는 꿈에 죽은 두 형(희신, 요신)이 나타나 함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장례도 함께하지 못했다며 애통함에 서로 붙들고 통곡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