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대문시장 (문단 편집) == 역사 == [[조선]] 초기부터 600년 이상 상업 활동이 이어진 유서 깊은 전통시장이다. 1414년 '정부임대전' 을 개시한 것을 시작으로 시장의 시초가 되었으며 [[일본 제국|일제]] 때인 1911년 친일파 [[송병준]]이 '조선농업주식회사' 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지금의 시장이 개장되었고 이 때부터 상거래 등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육의전이 [[금난전권]]을 가지고 있어 한양 도심에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없어 남대문 바깥쪽에 시장이 서기도 했다. 1922년에는 한때 소유주가 일본인으로 바뀌어서 일본인 소유의 시장이 되기도 했으며, 1936년에는 [[조선총독부]]의 훈령에 따라 남대문시장이라는 명칭 대신 '중앙물산시장'이라는 명칭으로 강제 변경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는 [[일본]] 상인들의 독점횡포 등으로 인하여 한국인 상인이 운영하는 점포는 소수에 불과하기도 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점포도 일본인들이 마구 쫓아내는 바람에 염천교 쪽으로 점포를 옮겨야 하는 수난도 겪어야만 했다. 세금징수 면에서도 일본인 지주들의 횡포 때문에 한국인 상인의 경우 일본인 상인에 비해 많은 세금을 지불해야 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일본인들이 모두 쫓겨나고 염천교 등으로 밀려났던 한국인 상인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여 활기를 띄기도 했으나,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시키면서 상인들이 모두 피신하거나 일시 철수하고 시장도 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변하는 등 한때 시장기능이 마비되어 상거래가 전면중단 되기도 했다. 1968년에는 시장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중심부가 전소되고 상점들도 화재 및 재산 피해를 입는 수난을 잇따라 겪었으며, 1975년에도 화재가 재발하여 화재 및 재산 피해를 내는 등 전쟁 이후에도 화재로 인한 수난과 피해를 여러 차례 입기도 했는데, 특히 전기로 인한 화재가 잦았다. 건물이 노후화됨에 따라 전기 설비도 노후화되어 누전이나 합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래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전기 설비 용량이다. [[대구광역시]] 최대의 재래시장인 [[서문시장(대구)|서문시장]]도 2지구에서 2005년 말 전기 때문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