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부군 (문단 편집) == 남부군에서 종군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기 == [[파일:attachment/L_18.jpg]] 신문 기자 출신으로[* [[조선중앙통신사]]의 전주지사에서 보도과장으로 안락하게 일하면서 멀리 서울에서 오신 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급]]의 50%만큼 [[상여금]]을 추가로 받았으니 그럭저럭 높은 지위였다.] 남부군 사령부 편집지도원[* 전지에서 군사신문(신문 이름은 모든 빨치산이 통일하기로 해서 전북 지역만 빼고 전부 "~승리의 길"(~는 해당 지역명)이란 이름이었다.)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정치부 소속 대원. [[정치장교|정치위원]]보다는 세 계단 정도 아래다. 편집지도원도 좋게 불러줘서 그렇지, 그냥 정치부 소속 기자로 일종의 간부 대우다. 지리산 지부(=남부군)는 실질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했다.][* 남부군에선 간부의 신원 파악을 어렵게 하기 위해 일반 전투원들에겐 성명이나 직위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래서 많은 병사들이 간부들의 이름이나 직위를 혼동했다(정치부원을 사령부 참모로 알고 있다든지). 심지어 경남도당 위원장 남경우의 본명은 아무도 모르기도 했다. 결말 부분에서 정치부 편집지도원인 그를 사령부 참모라고 착각하는 교도대원(최근에 복귀한 부상자들의 부대)이 나온다.]으로 종군한 [[이태]](본명은 이우태, 1922~1997)가 쓴 빨치산 수기다. 이태는 [[태평양 전쟁]] 말기 학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그당시 드문 대학 ([[국학대학]]) 졸업자로서, 흔치 않았던 인텔리다. 남한 출신의 좌익 인사로서 빨치산에 참여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소대장이었다. 중간에 사단 정치위원 이봉각이 편집지도원으로 임명. 북한 출신과 남한 출신과의 대우가 꽤 달랐다.][* 이것은 빨치산의 계보를 이해해야 한다. 빨치산은 1948년 이전에 이미 입산해서 활동하던 구빨치와 1950년 인천상륙작전이후 낙오한 인민군들이 입산한 신빨치로 나뉜다. 이태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구빨치는 대부분 사라지고 북한 출신 신빨치들이 주축이던 시절이다. 더구나 이북 정권에서 남로당 계열이 몰락한 것이 남한 내 빨치산의 역학구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남부군의 활동에 치중하고 오히려 남한에서 투쟁 중인 빨치산을 나 몰라라 했던 북한의 [[높으신 분]]들을 비판하는 경향이 많다.[* 2년간의 휴전협상 과정에서 북은 빨치산 문제를 단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빨치산의 상당수가 낙오한 인민군으로 이북의 지시에 따라 전투부대로 재편돼서 게릴라전을 수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지금도 북한에서 빨치산을 제2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남로당계열 게릴라들로 남한에서 테러 및 약탈을 가하던 자들이라고 격하하며 그들은 우리랑 상관없다는 투로 주장하면서 교과서로 대충 가르친다. 때문에 탈북자들도 남한에 와서야 빨치산을 제대로 알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이태는 빨치산 생활 겨우 17개월 한 것이 전부다. 빨치산 역사를 [[제주 4.3 사건]], 혹은 [[여수·순천 10.19 사건]]부터 시작해서 54년 [[남도부]]체포까지로 본다면 약 5년 반인데 이태는 그중 정말 일부만 보았다. 게다가 작가가 의도한 이 책의 제목도 애초에는 〈남부군〉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작가는 짧은 빨치산 활동 중에서도 절반만 남부군에서 있었고 나머지는 전북도당에 있었다. 남부군의 거의 처음과 끝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지아]]의 소설 〈빨치산의 딸〉 2권의 주인공인 남부군 정치지도원 이옥자에 비하면 체험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태가 체포된 후 군경의 제2차 대토벌 작전 등의 큰 사건이 빠져있는 등 부족한 부분이 많다. 또한 이태가 고의적으로 잘못된 내용을 적은 것도 있다고 한다. 분명 본인이 정확히 알 사실인데 사실과 다르게 표시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인데, 이 수기 때문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서 그렇게 처리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태는 [[9.28 서울 수복]]으로 북한이 후퇴할 때 입산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딱히 공산당 지하당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다. 소설 〈빨찌산의 딸〉, 〈장군의 후예(마지막 빨치산 사단장 황의지)〉, 〈실록 남도부〉의 주인공들은 6.25 이전부터 활동한 구빨치들로 도당 유격대의 확실한 간부들이었다. 그들에 비해 비당원에 하급 간부였던 이태가 접한 정보들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책에도 빨치산에서는 시간 관념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나온다. 초판 때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은 개정판이 나오면서 지속적으로 고치고 있으며, 당원/간부와 비당원/평대원의 중간적인 입장에 있던 그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내용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같은 전북도당 유격대에서 활동했던 황의지의 책과 비교해보면 유격대 사령관과 소대장의 입장과 시선 차이가 많이 보이니 비교해보면서 읽는 것도 좋다.[* 남부군 초판에서는 이태는 황의지의 이름을 모르고 땅끄병단장 '학소' 동무로 알고 있었다. 책 출판 후 황의지에게 연락이 와서 개정판부터 본명이 나온다. 이태는 7개 병단 중 하나인 독수리 병단 예하 4중대 2소대장이었으니 신분상 차이가 많이 난다. 황의지의 책에는 하급 간부였던 이태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었는지 안 나온다.] 예를 들어 이태가 빨치산에 막 들어가자 마자 탈영병 때문에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는데, 이태는 이에 매우 충격을 받는다. 황의지의 책에서는 그 탈영병을 지키던 보초가 자신의 부하였고, 형집행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등 자세한 배경 설명이 나와 있다. 이처럼 한 사건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기도 하는 반면에, 한 사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군경에게 쫓길 때 700명의 부대를 둘로 쪼개서 300명이 변산반도 쪽으로 갈라져 나가는데 황의지는 작전상 전라북도를 북쪽과 남쪽으로 나눠서 통제하기 위한다는 지도부의 계획을 써 놓았는데 비해, 이태는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도당지휘부와 반대 반향으로 간 부대는 시선을 끌기 위한 총알받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위에서 언급한 책들의 주인공인 구빨치 등은 자신들이 [[여수·순천 10.19 사건]] 이후 2년간 거의 대부분이 죽어가면서 빨치산의 맥을 이어 놓다가, 6.25가 터지자 자체적인 조직으로 각 도시, 기관들을 접수하여 인민군을 환영 하였는데 노동당 중앙당에서는 남한 좌익계인 남로당계가 아니라 듣도 보지도 못한 인물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요직을 죄다 차지하게 만들어 충격을 받는다. 이태는 이 시점으로부터 3개월 뒤에 입산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학 관계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감지만 하고 있었다. 즉 남부군만 읽고 빨치산에 대해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것이다. [[6.25 전쟁]]도 학술서 외에 수기류로 조망하려면 사단장→군단장이었던 [[백선엽]]의 〈군과 나〉를 봐야지, [[김용배]] 대대장→연대장의 일대기인 〈세월의 이끼에 가려진 보석〉이나 이무호의 〈어느 졸병이 겪은 한국전쟁〉을 읽어서는 6.25 전쟁 전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특정 전투 또는 병사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실감나게 다가갈 수 있는데, 이태의 〈남부군〉은 후자에 가깝다. [[이태]] 자신은 1952년 생포되어 처벌 후 사상 전향하였고, 이후 정계에 입문해서 6대 국회의원도 지내는 등 야당에서 활동하였다. 1980년대 민추협과 YS의 민주산악회 간부도 역임했다. 전쟁 중 틈틈이 쓴 수기와 나중에 가필한 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일부는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에 그대로 수록된다.[* 이 부분은 두 사람의 말이 다른데 이태의 경우는 자신의 수기가 이병주에 의해서 도난, 표절되었다고 하고 이병주는 이태로부터 그것을 허락받고 받아서 일부 발췌했다고 한다. 사실 관계는 당사자들이 알겠지만 이병주의 소설에서는 엄연히 '''이태의 수기'''라고 출처가 명시되어 있고 이태 자신도 비중있는 조역으로 등장한다. 다만 작중에서 이태는 좀 찌질하게 나왔다는 게 문제.] 87년 민주화 이후 두레출판사에서 초판이 발간되었고 이후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을 결합해서 개정판이 나왔다. 초판을 낸 후 위에서 언급한 전북도당 간부 황의지등과 연락이 되면서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많이 고칠 수 있었다.(남부군 간부 이옥자와는 그녀의 딸인 정지아가 〈빨치산의 딸〉을 출판한 후에 연락이 된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실록 [[정순덕(빨치산)]], 실록 [[남도부]], 빨치산의 딸, 마지막 빨치산 사단장 황의지 등 빨치산 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물론 그 전에도 가끔 이런 수기가 나왔지만 대부분 반공물 내지는 의도적인 하렘물인 경우가 많았다.] 지리산 등지의 민간인 학살 사건도 새롭게 조명받았다. [[이태]]는 일관되게 민중운동으로서의 빨치산 활동을 탄압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다. 또한 빨치산을 내팽개친 김일성 정권에 대해서도 매섭게 비판하면서, 이현상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이태의 이현상 전기는 북한의 이현상 암살설을 심도있게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과 이 책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종종 친북적이라고 오해 받지만 사실 매우 '''반북적이고 반김씨일가적인 책'''이다. 이 책은 해방정국의 우익들의 횡포를 고발하고는 있지만, 지리산 빨치산을 버린 자식 취급하여 그들이 남한 땅에서 의미 없이 죽도록 내버려둔 북한 체제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다. 이태는 만약에 북한 측이 이념적 동지애, 아니 휴머니즘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전선 뒤에 남겨졌던 빨치산들도 귀환하게 할 방법을 강구했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대부분 죽음으로 끝장난 이들과, 이를 토벌하기 위한 남한 군경의 전몰자를 고려한다면 김씨 일가나 북한 체제는 나쁜 놈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이현상이나 남한 출신 빨치산은 매우 영웅적이고 지사적으로 나오지만, 북한 출신의 빨치산들은 마치 정복자처럼 굴면서 사상성도 매우 낮으며, 토벌전이 가열되자 제일 먼저 투항하는 비겁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 책은 결코 [[종북주의자]]들이 좋게 볼 수 없는 책이다.[* 이와 완전히 대비되는 책이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에서는 빨치산을 영웅적인 관념에서 이해한다. 은근한 차별에 시달리던 남한 출신 빨치산이 북한 출신 빨치산과 잠깐 다투었다가 공평한 처벌을 받고 스스로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면서 화해하는 결말로 끝나는 등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초판 발행 1988년 7월 11일 개정증보판 발행 1990년 3월 15일[* 초판 발행이후 여러 생존 빨치산에게 연락이와 책의 오류를 지적해주어 여러군데를 수정하였다. 이때 연락온 대표적인 사람이 빨치산 사단장 황의지와 외팔이 부대장 최태환.] 상하합본판 발행 1993년 4월 26일 재편집증보판 발행 2003년 3월 29일(지도만 추가. 내용 추가X) 재편집증보 개정판 2014년 9월 20일[* 위의 사진은 이책의 표지이다.] 정치성향을 다 떠나서 이태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이나 재건 조선공산당에 대한 정보는 틀린 정보가 많으니 조심해야 할 책이다. 예를 들면 [[경성콤그룹]]에 리승엽이 가담했다고 쓰는데 틀렸다. 더 나아가 리승엽이 이현상과 동일한 지위였다고 쓰는데 아니다. 이현상은 경성콤그룹 간부였고 리승엽은 경성콤그룹이 아니라 자유와독립그룹이다. 이현상과 리승엽이 같은 지위라면서 무슨 공산주의 비밀결사 조직원은 다 평등하다는 소리를 하는데 전혀...공산주의 비밀결사라고 다른 독립운동 비밀결사와 다를 것 없다.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 항목에는 이책과 다른 빨치산 문학과의 비교가 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