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관계 (문단 편집) == 약사(略史) == [[1945년]] [[8.15 광복]] 이후 [[미군]], [[소련군]]의 진주[* 소련군은 [[만주 작전]] 이후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였다.]에 따른 [[남북분단]] 이후 한반도 이남은 [[미국]]이, 이북은 [[소련]]이 진주하게 되면서 [[1948년]] 8월에는 자유진영의 [[대한민국]] 정부가, 9월에는 공산진영의 [[북한]] 정부가 수립되었다. 남북한의 관계는 동족관계이면서도 소련에 의해 기용된 [[김일성]]이 소련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극단적인 인물이고, 이에 반대파가 대응하는 방식도 유화적이지 않았기에 상호간의 적대관계가 매우 짙은 편이었다. 분단이 되고 수년 뒤 민간인까지 왕래가 끊겨지게 되었고 교통은 더 일찍 절단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38선]]. [[박헌영]] 등 [[남로당]] 등의 자체 공산세력이 [[미군정]] 치하에서 공산정부 수립을 위해 여러 방도를 썼고, 북한에서는 [[조만식]] 같은 민족주의 우파가 정치활동을 시도했으나 결국 모두 처리되었다고 한다. [[1948년]] [[UN]] 한국임시위원단 회의에서 [[이승만]] 등은 [[미국]]과 [[UN]]의 도움하에 남한에서만 선거를 실시하여 단독정부 수립을 희망하였고 [[백범]] [[김구]] 등 [[한국독립당]] 등은 남북한 전역에서 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결국 [[북한]]과 [[소련]]이 선거를 거부함에 따라 [[대한민국]]이 남쪽 지역에서만 선거를 실시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동년 [[9월 9일]]에는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명의 정권을 수립함에 따라 분단이 확정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여 [[6.25 전쟁]]이 일어났고 1953년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남북관계는 전쟁 이후로 더욱 적대관계를 형성하였다. [[북한]]은 휴전 이후에도 [[대한민국|남한]]을 겨냥한 여러 침투, 공작, 민간인 대상으로 한 학살 대통령 암살 목적의 수많은 테러사건을 벌였다. 남한은 [[실미도 사건]]으로 유명해진 [[공작원|북파공작원]]들을 파견하였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방북하여 [[김정일]]을 만나게 되면서 1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그 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 [[2000 시드니 올림픽]] 남북한 선수단 동시입장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도 하였지만 [[제2연평해전]], [[북핵문제]] 등이 일어나기도 하여 여전히 문제의 불씨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서로 간의 관계에 진전을 보이기도 했지만 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으로 위기가 고조되기도 하였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이명박정부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른바 '비핵 개방 3000구상'을 대북 노선으로 견지하였으나 북한이 이에 반발하여 남북관계는 경색되었다. 이후 악화된 남북관계는 결국 금강산 관광 중단, 2009년 5월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와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계속 이어졌다. [[2013년]] 은하 3호 발사와 3차 핵실험 여파, 종전협정 파기 운운으로 남북관계는 역대 최악까지 흘러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100일 이후에 들어서 남북 당국회담이 개최되기로 합의됨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가 정상화 될 지가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회담 1일을 앞두고 대표격 문제로 파기됨으로서 무산되었다. 그리고 북한이 계속해서 핵실험을 진행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2015년에는 목함지뢰 사건과 서부전선 포격으로 말미암아 남북관계는 계속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2016년에는 개성공단 가동까지 중단되었다. 그야말로 남북관계의 암흑기. 그러다 2017년 3월 10일 남한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박근혜가 탄핵당하고]], 뒤이어 5월 10일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며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2017년 내내 북한은 남한과 대화 없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2018년이 되자마자 북한의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발언을 했고, 이후 대화는 급물살을 타면서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3차 남북정상회담]]에 그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2018년 북미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냈다. 2019년에 들어 남북 간 사이가 냉랭해지고 하노이에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별 성과 없이 돌아가며 남북한관계가 다시 시험받았고, 결국 2020년 남한에서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면서 남북관계는 다시금 냉랭해졌다. 더욱이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을 전후해 '선제타격론', '북한 주적론' 등 대결주의적인 주장들도 다시금 힘을 얻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3차 남북정상회담을 '정치 쇼'라고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35692_35744.html|비판하며]] 국방백서상 주적 표현 부활, 한미연합훈련 강화, 사드 정상화 등을 통한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고, 북한 측은 그해 9월 '국가핵무력정책법'을 제정하며 핵포기 불가 의지를 고집했다. 2023년 들어서 통일부에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는 한 단돈 1원도 주지 마라"고 지시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 발간하고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세력의 진영화'와 북핵 저지를 이유로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 함께 '한-미-일 3각 유사동맹' 구축을 추진 중이다.([[https://m.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91148.html#cb|한겨레 기사]]) 2023년 여름에 성신여대 교수 시절 '현 북한 정권 타도를 통한 흡수통일'을 우파 언론/유튜브 등지에 피력해 온 김영호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 조직을 4개로 축소시키고, 정세분석국을 강화하고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 관련 조직을 신설시키는 조직개편을 추진 중이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30731/120490615/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