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관계 (문단 편집) === 해방 이후 ~ 1950년대 === [[파일:/20151015_176/1444836427992OWutg_JPEG/art_1435452305.jpg]] 북한 체제를 겪은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 중에는 북한이 '인간으로서 살 수 없는 곳'임을 '남한 토박이'는 이해가 힘들 것이라며 북한을 싫어하는 경우도 많았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903500125|#]] 이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을 포괄한다. [[토지개혁]]이 지주를 아예 척살하자는 등 폭력적으로 전개되어 목숨이 위험해져 내려온 사람도 많고, 상업으로 성공한 평안도 쪽은 공산 정권과 성향도 꽤 달랐기 때문이다. 함경도는 공산주의 세력이 좀 있었으나 그곳도 소련군정과 북한 정부의 평범한 사람에 대한 탄압이 심해[*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 [[문용형]]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의 경험으로 공무원을 하기 싫었다고 한다.] 내려온 사람이 많았다. 다만 통일을 가장 강하게 원하는 쪽도 실향민이라 지금도 교양필수로 통일 교육을 하는 [[숭실대학교]] 같이 그 유산이 남아있다. 과거에도 [[평안도]] 출신이 깊게 관여한 잡지인 [[사상계]]도 통일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김일성 가문을 옹호한다기보다는 그 고향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다. 유엔은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에 남북한 총선거를 주장했지만, 소련과 북한은 유엔 임시 위원단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막았다. 이에 한국이 단독으로 선거를 치르고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동안 북한은 군사력을 키우는데 치중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0810131443475|#]] [[1948년]]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의 수립 이후 당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북한]]에 대해서 반공 노선과 [[북진통일]]론을 취해왔다. 특히 남북협상을 위해 방북(訪北)한 백범 [[김구]]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그가 방북을 했을 때도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동안 총선거를 거부한 북한은 [[화전양면전술|갑자기 총선거를 1950년 6월 받아들이겠다는 주장을 하더니 몇 주 있다가 전쟁을 일으켰다.]] [[http://db.history.go.kr/id/dh_017_1950_06_07_0120|#]] 1950년 6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일반 국민들도 [[반공]], [[혐북]]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6.25 전쟁 당시 정전협정을 논의할 때도 북진통일론을 내세우며 계속 반대했으며, [[유엔군사령부|UN]]과 [[반공포로 석방 사건]]같은 충돌이 있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는 1953년 [[정전 협정(6.25 전쟁)|정전 협정]] 체결 당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승만은 [[1960년]] [[4.19 혁명]]으로 사임할 때까지 반공노선을 계속 지향하게 된다.-- 전쟁이 난 상황에서 다른 노선을 채택할 수 없잖아-- 자세한 내용은 [[멸공통일]] 항목 참조. 전쟁 이후에는 남한을 지배하는 한국은 북한을 [[소련]]의 [[괴뢰 정권]]이자 [[민족 반역자]]라고, 북한은 한국을 [[미국]]의 괴뢰 정권이라 주장하며 [[괴뢰]]도당 운운하며 서로에게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며 대립했다. 남한에서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한국 정부가 세워진지 얼마되지 않던 시기였고, 북한에서 고조선을 인정하려는 제스처 등의 민족주의적 선전을 강화하지 못하는 대신 김일성의 기반이 약하여 스스로 외세에 충실한 제스처를 보냈으며, 오히려 실향민 등에 의해 북한에서 호칭어를 '동무' 따위로 바꾸며 '봉건주의 타파' 등의 선전을 통해 옛 민족문화를 파괴하는 듯한 행각도 부각되던 때라 당시만 해도 민족주의적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인식이 우세했다. 이때 한국의 국민들도 대부분 북한의 [[김일성]]을 소련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정도로 생각했고, 당연히 북한은 국민들에게 소련의 [[괴뢰 정권]]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인식 속에서 북한 괴뢰의 준말인 [[북괴]]가 탄생했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진보당 사건]]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가 [[조봉암]]이 국시인 멸공통일 대신에 평화 통일을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조봉암은 이 주장을 한 죄로 사형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