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전쟁 (문단 편집) === 전후 재건시대 === 북부의 승리로 남부연합은 해체되어 연방에 다시 통합되었다. 연방의 일원으로 다시 된 남부와 우호 관계를 기대한 북부 정치인들은 관대한 조건을 제시했고, 남부 정치인들이나 군인들이 크게 처벌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방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으면 참정권이 제한되고 남부 출신들은 연방공직에서 쫒겨났으며, [[군정]]이 실시되어 북군이 남부 주에 대한 통제를 실시했다. 이후 전후재건과 노예해방 정책이 링컨 정부 아래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남부 강경지지자인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링컨이 암살되는 바람에, 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부임한 남부 출신 [[앤드루 존슨]]이 이어받게 된다. 그러나 존슨은 노예해방에는 어물쩍한 태도를, 남부에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뿌리깊은 [[인종 차별]]의 씨앗은 해결되지 않았다. 전후에도 남부인들의 심적 반발로 [[쿠 클럭스 클랜|KKK]] 등 창설되었고, 이후 후임 대통령에 의해 흑인 남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진 뒤에도 선거에 참여한 흑인들에게 KKK단이 테러를 가하는 등 전반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미국 흑인들이 진정으로 시민으로써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는 무려 100년이 지나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과 민권운동이 있던 [[린든 B. 존슨]] 행정부 때즈음에 와서의 일이다. 또 노예경제가 한방에 해체되면서 목화를 주산업으로 한 남부 대농장 [[플랜테이션]]들은 크게 타격을 받아 경제적 격변이 일어났다. 재산을 잃고 몰락한 백인 농장주들의 북부에 대한 증오는 미국 정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죽하면 남부의 경제적 혼란은 20세기 후반 제조업이 이 지역에 대거 진출할 때까지 이어졌다.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남부와 민주당이 [[러더퍼드 B. 헤이스]]의 석연치 않은 당선을 인정하는 대가로 남부의 연방 주둔군이 모두 물러나고 남부 주들의 '자치'가 보장되는 1877년의 타협이 일어나 재건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10년 남짓의 시간 동안 참정권을 인정받아 투표와 주정부, 연방정부에 참가하기 시작했던 흑인들은 조직적, 폭력적으로 다시 참정권이 배제되었고 남부 주정부는 다시 민주당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런 남부의 시대착오적 행보는 약 1세기가 흘러 충분히 성장한 흑인들의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통해서야 막을 내렸다. 내전, 그것도 대규모 총력전을 치뤘음에도 (비교적) 남아있는 불씨나 지역갈등이 적다는 면에서 사회사적 의의도 크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역시 지금까지 연구대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