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전쟁 (문단 편집) === 미연합국 ===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약하고 분권적인 특성상 연방군에 비해 훨씬 지휘가 파편화되어 있어 각 주별로 부대가 따로 존재하고 연계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 부대 이름에 주의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 중부 켄터키군(Army of Central Kentucky): 1861년 창설되었다. 이후 미시시피군으로 통합되어 [[샤일로 전투]]를 치렀고, 미시시피군은 다시 테네시군으로 이름이 바뀌어 남군 서부전선 주력부대가 되었다. * '''북버지니아군(Army of Northern Virginia)''': 동부전역의 주력부대이자 남군 최대부대. 1차 불 런(매너서스) 전투 이후 남군 섀넌도어군과 포토맥군 2개 야전군의 융합으로 창설되었다. 남부연합군 그 자체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성과 상징성이 컸으며 북버지니아군 예하 부대의 주요 지휘관들은 다른 야전군의 사령관보다도 네임밸류가 높다. 사령관은 조셉 E. 존스턴, [[로버트 E. 리]]. 예하 부대 지휘관들로 [[스톤월 잭슨]], [[제임스 롱스트리트]], A. P. 힐, [[제임스 이월 브라운 스튜어트|젭 스튜어트]] 등이 유명하다. 동부전역의 모든 주요 전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었으며 로버트 리는 1865년 정식으로 남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되기 한참 전부터 실질적인 총사령관 취급을 받았다. * 테네시군(Army of Tennessee): 서부전역의 주력부대이자 남군에서 두 번째로 큰 야전군. 연방측 테네시군과는 달리 강 이름이 아니라 주 이름을 딴 것이다. 주요 사령관은 브랙스턴 브래그, 조셉 E. 존스턴, 존 벨 후드. 원래 이름은 미시시피군이었으며 이 당시 샤일로와 코린트에서 연방군에 패했다가 테네시군으로 재편성되었다. 중부 테네시에서 로즈크랜스의 컴벌랜드군에게 쭉 밀리다가 치카무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채터누가에서 애틀랜타까지 다시 쭉 밀려났다. 이후 전쟁의 일발 역전을 위해 테네시로 진격했으나 프랭클린-내슈빌 전역에서 괴멸되다시피 하고 실질적인 전투력을 상실했다. * 빅스버그군: 정식 명칭은 미시시피군(Army of Mississippi)으로 사령관은 존 C. 펨버튼. 빅스버그를 사수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결국 그랜트에게 패해 항복하고 빅스버그를 내주었다. * 트랜스미시시피 군관구(Trans-Mississippi Department): 미시시피강 서쪽 3개주(텍사스, 아칸소, 루이지애나의 대부분)의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사령관인 에드먼드 커비 스미스는 북군이 미시시피강을 장악하고 [[빅스버그 포위전]]으로 남부연합 대부분과의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도 레드 리버 전역 등 북군의 침공으로부터 미시시피강 서부를 지켜냈다. 커비 스미스는 이들 3개주에서 종전 전까지 민간인 주지사들보다도 강한, 군사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누려 커비 스미스 왕국(Kirby Smithdom)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남군 주요 병력 중 마지막으로 항복했다. * 밸리군(Army of the Valley): 1864년 피터스버그에 대한 압박을 풀기 위해 셰넌도어 계곡 지역으로 파견된 주발 얼리 휘하 병력이다. 워싱턴 코앞까지 진격하기도 했지만 1864년 10월 시더 크릭 전투에서 필립 셰리든이 이끄는 북군 셰넌도어군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잔존 병력은 대부분 피터스버그의 로버트 리에게 복귀했고 얼리는 소규모 병력으로 항전하다가 1865년 3월 웨인스보로 전투에서 괴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