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전쟁 (문단 편집) === Lost Cause === 남북전쟁 종결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남북전쟁의 남군 생존자들과[* 주발 얼리가 대표적이었다. 이는 남군 전우회 연합(United Confederate Veterans)와 남부 연방의 딸들(United Daughters of the Confederacy) 단체 등으로 계승된다.] 남부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남북전쟁에 노예제는 구실일 뿐이고 다른 배경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흔히 Lost Cause(잃어버린 대의)라 한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남부는 고유의 이상, 명분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미국 남부의 학자들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현재 친남부적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전문사학자가 아니다.''' 남북전쟁과 관련해서 권위를 널리 인정받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등의 남부 대학들에서 연구하는 사학자들은 노예제가 전쟁의 주 원인이라는 것에 확고하게 동의하고 있다. 리치먼드 소재 남부연맹 박물관 (Museum of Confederacy) 또한 노예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란 학계의 정설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의 학계에서 폐기된 학설에서 주로 나타나는 주장은 남부에 불리한 관세 문제나[* 공업지대가 많았던 북부 주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원했지만 주 산업이 농업이었던 남부주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사탕수수같은 환금작물만 고관세로 보호받기를 원했고 공산품같은 경우 외국, 특히 영국의 보복관세를 우려해 고관세를 반대했다. 즉 북부는 고관세, 남부는 일부만 고관세 + 대부분 저관세를 원했다. 웃기게도 전쟁 터지기 전인 1857년에 양쪽이 합의한 관세법 때문에 미국의 관세율은 사상 최저치를 찍었으며, 민주당이 집권한 연방정부는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린다.] 연방정부의 주의 권리 침해 등을 전쟁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전쟁 전인 1857년에 북부와 남부가 합의한 관세법으로 인해[* 1857년부터 1861년까지 유효] 관세율은 1830년대 이후로 미국 역사상 거의 최저치를 찍었으며, 전쟁 바로 직전에 통과된 모릴 관세법은 이미 일부 남부 노예주들이 탈퇴를 하는 통에 노예주 민주당원들이 의원직을 사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참고로 미국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다. 민주당원들이 그대로 남았으면 그대로 통과되지 못했고 타협안이 나왔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원들조차도 연방정부가 지속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저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어느정도 조정은 불가피했다. 게다가 1830년대 관세분쟁이 증명한 것처럼 사우스캐롤라이나같은 매우 소수주들을 빼고 분리독립을 추구할 정도로 큰 불만은 아니었다. 남부연맹 부통령인 알렉산더 스테펜은 관세는 메사추세츠와 타협했기에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공화당이 전쟁 이후 국가 부채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북부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관세율을 유지한 면이 적잖아 있으나, 이것은 남부가 노예제 보호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원래는 불가능했고 또 불필요한 일이였다.] 남부 주들은 '주 정부의 권리'나 '남부의 경제적, 문화적 차이'라는 명분도 노예제의 맥락에서만 들이댔다. 일단 남부 노예주들은 1850년 도망노예법을 밀어붙일 때 저항하는 북부 주들의 '주 정부의 권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주 정부의 권리'란 결국 노예주가 노예를 마음대로 하는 권리에 불과했고, 근본적인 문제는 노예제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이 말하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차이' 또한 결국 근본적으로는 노예제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후대 [[컬럼비아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친남부 역사학자들은 더 나아가 "남북 전쟁은 노예제를 두고 남부가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각 주의 권리를 짓밟기 위해 북부 연방 정부가 시작한 전쟁이다"라는 극단적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면 막상 전쟁 이전과 당시, 직후에서 남부 동맹측 주요 정치인, 언론인, 장군들의 발언들을 조합해 보면 남부 동맹의 대의는 주의 자치권보다는 '''노예제와 백인 우월주의의 사수와 백인 인종의 생존권 사수'''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노예 인구가 너무 불어나 어떤 주들에서는 흑인 노예인구가 백인 자유민 인구를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런 노예들의 아이티 혁명같은 반란을 두려워하며 노예제 사수를 백인 인종의 생존권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노예제와 상관없이 주의 자주권이 문제였다면 [[앤드루 잭슨]] 시절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연방 탈퇴 드립을 쳤을 때 같은 남부 주들이 전부 다 이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부, 특히 영국과의 교역에 깊게 의존하던 뉴잉글랜드 지방의 주들도 [[미영전쟁]] 당시 주의 자주권 드립을 치며 연방의 전쟁에 비협조적으로 나온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뉴잉글랜드가 반란을 일으키고 독립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대의‘는 단순히 전쟁의 원인을 북부에 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 이전 남부 사회 및 남부연합 자체를 낭만화시켰다. [[로버트 E. 리]], [[스톤월 잭슨]]으로 대표되는 남부의 용감하고 고귀한 군대가 승승장구하다가 북군의 머릿수와 산업 능력에 밀려 장렬히 패배하는 서사가 대표적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로 대표되는 남부 귀부인(Southern belle) 및 남부 상류층 사회의 미화, 가혹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북부 노동자들과 대조되는 충성스럽고 잘 대접받는 흑인 노예 등의 이미지가 모두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관에 비판적인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이 사관이 노예제 문제를 희석해 남부동맹을 미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 제퍼슨 데이비스 같은 남부 인사들의 사후 변명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에드워드 폴러드, 더글러스 프리먼 등 친남부적 역사학자들이 확립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국가의 탄생]] 같은 프로파간다성 대중 매체를 통해 재생산된 관점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과 반박에 대해서는 [[아메리카 연합국]] 문서에서 더 자세히 읽어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