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산1호터널 (문단 편집) == 역사 == 1969년 3월 13일에 착공하여[* 당초에는 방공호 역할을 하기 위해 [[남산2호터널|2호터널]]과 만나는 중앙에 약 23,000㎡ 규모의 지하 교통광장과 교차로를 둘 계획이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무산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4HNPGtsPz8|당시 대한뉴스]]] 1970년 8월 15일에 개통했다.[* 당시 남산1호터널은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 이 터널이 개통된 걸 기점으로 장대터널이 슬슬 개통하기 시작했고, 고속도로 쪽에도 90년대부터 장대터널이 개통하기 시작한다. 남산1호터널은 장대터널들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다. 요즘은 장대터널들이 흔하디 흔하지만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장대터널들은 서울과 부산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고속도로에서 장대터널을 보기에는 쉽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터널은 달랑 한 가닥으로, 터널 폭은 최대 4차로까지 수용가능한 당시 폭이 가장 넓은 터널이었다. 그러나 제대로된 시공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무작정 터널을 넓게 파다보니, 개통 1년만에 누수와 천장에 거대한 금이 가는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폭이 15m를 초과하는 광폭터널은 아치형으로 굴착해 하중을 분산시켜야 하는데, 공기를 단축하고 굴착량을 절감하기 위해 정방형으로 파다보니 문제가 속출한 것이다. 결국, 1975년 6월 1일부터 터널을 폐쇄하고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터널 폭을 40% 가량 줄여서 터널 벽면에 가해지는 부하를 절감하고자 했다. 이렇게 기존의 시설을 감축시키고 막대한 예산을 들였음에도, 1976년 1월 7월에는 터널 벽면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왕복 2차로의 터널이 된다. 그 이후에도 문제가 속출했는데, 경제발전으로 서울시내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터널 통행이 많아지자 1980년대 초반에는 터널 공기질이 대단히 나빴다. 환풍장치가 1970년대 초반의 서울시 교통사정에 맞춰 설계된 터라 한계를 넘어선 탓이었다. 이 문제는 1982년에 환풍장치를 보강하는 쪽으로 개선이 되었지만 자동차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서 또다시 한계를 넘어섰다. 1980년대에 자동차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1호터널은 하루종일 막히는 상습 정체구간이었다. 이 때문에 1983년부터는 가변차로를 실시, 출근시간대에는 시내방향만, 퇴근시간대에는 한남동 방면으로만 통행을 시켰다. 1984년에는 1975년 공사 때 누수 문제 때문에 좁혀놨던 터널 내벽을 다시 넓혀서 3차로로 늘리는 방안도 나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고, 정체가 너무 심하다보니 보수도 못 해서 안전에도 문제가 많았다. 1987년 9월 11일, 서울시는 결국 1호터널 옆에 새 터널을 하나 더 뚫어 왕복 4차로로 확장하는 방안을 내놓는다. 새 터널은 1989년 5월 25일 첫 삽을 떴고, 1993년 12월 28일에 개통했다. 하지만 새 터널이 뚫렸어도 한동안 왕복 2차로로 운영되었는데, 구 터널의 하자가 너무 많아서였다. 통행은 새 터널로 모두 돌리고, 구 터널은 새 터널 개통과 동시에 폐쇄하고 약 1년 반 동안 거의 다시 만드는 수준으로 보수공사를 하여 1995년 6월 10일 재개통했다. 이로써 지금의 1호터널이 완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