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오세티야 (문단 편집) == 남·북오세티야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남오세티야-북오세티야 관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ssetia01.png|width=270]] 명칭이 굳이 남(南)오세티야인 이유는 러시아 연방령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북오세티야]]가 있기 때문이다. 오세트어로 남오세티야는 '후사르 이르슈톤(Хуссар Ирыстон)', 북오세티야는 '처가트 이르슈톤(Цӕгат Ирыстон)'이라 한다. 스탈린 정권기에 남·북오세티야는 같은 민족 거주지임에도 문자가 달랐다. 북쪽은 키릴 문자, 남쪽은 조지아 문자를 사용했고 1954년에 이르러서야 키릴 문자로 통일되었다. [[파일:5917018_4.jpg]] 북오세티야도 정세가 그리 안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이 반러 성향이 짙은 체첸인·인구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인구시인의 터전이었던 프리고로드니구(Пригородный район, Prigorodny District)를 러시아에 충성하던 오세트인들에게 멋대로 넘긴 것이다.[* 오세트인은 러시아인들과 똑같은 [[정교회]] 신자이며 러시아의 캅카스 정복 당시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흐루쇼프]] 시대에 인구시인이 귀환하여 이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오세트인들은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그 결과가 1992년 발생한 인구시인-오세트인 분쟁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오세트인을 지원해 주었고 애꿎은 이 지역 인구시인 민간인들만 피해를 봤다. 이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계열 체첸인 반군에 의해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