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셔널리즘/민족주의 (문단 편집) == 한국에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시각 == 서구권에서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경험으로 인해 민족주의라는 인종차별,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와 연관된 멸칭으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지식인 중 일부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비판적인 인식이 있지만[* 민족주의가 국수주의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나온 것은 1945년 이전까지의 독일과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정책을 시행했던 식민제국으로 인한 부정적인 사례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우,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프로파간다에 경도된 [[NLPDR]]과, [[환빠]]와 같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다. 거기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보수층은 친일, 친미,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 민족주의 중에서도 반미, 친북 성향의 민족주의의 경우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을 중심으로 크게 퍼지기 시작한다. 이는 당시 운동권들이 군부독재정권이 독재에 대한 정당화를 위해 북한에 대한 공포, 적개심을 이용한다거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군부독재정권을 지원하고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의도적으로 지속시키려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은 분단 체제 타파가 민주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반미, 친북 성향의 민족주의가 크게 대두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민주화가 실현된 1990년대에도 학생 운동권 세력 내에서는 지속되었으며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1990년대 [[한총련]]의 구호와 노래를 보면 온통 반미, 자주, 통일에 대한 단어로 뒤덮여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에 반발하여 벌어진 촛불시위 역시 그러한 반미 성향의 민족주의 발현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 있었던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소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김산호의 [[대쥬신제국사]] 이현세의 [[남벌(만화)]] 같은 대중작품과 [[황우석 사태]], [[디워]] 논쟁 등을 보면 민족주의가 매우 강했음을 보여준다. TV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인 것이, [[느낌표(MBC)]]의 위대한 유산 74434와 같은 프로그램이나 [[주몽(드라마)]] 등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예능/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 선수가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심판에게 경고받으면 심판을 욕하는 수준이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민족주의가 비교적 약해진 편이다. 대학가에서도 반미자주 민족주의를 설파하는 세력은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고 대학가의 학생 운동은 성평등, 성소수자 인권, 장애인 인권 등과 같이 소수자 보호 중심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2000년대 중후반부터 계속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젊은층의 반감 역시 자연스레 북한과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쇠퇴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민족주의자인 [[백범 김구]]가 남긴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라는 말에 근거하여, 한국의 민족주의는 외세 침략을 방어하려는 성격이 강한 민족주의이며,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백범 김구가 평화주의적 민족주의를 내세우긴 했지만, 본인은 평화주의자가 아닌데 평화주의자로 잘못 서술되어 있었다. 백범은 광복후 국내에서,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백의사를 동원하여 [[백색테러]]를 시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당장 한국에서 [[만주]]고토와 [[대마도]]를 점령해야 한다는 극우적인 주장이 일각에서 지속되고, 호응도 존재하는 것을 볼때, 모든 한국인들이 침략에 반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령 평화적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쇄국|폐쇄적 성향]]을 띄고 [[갈라파고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또한 김구는 확고한 반공주의자였지만, [[반공]]보다는 [[민족]]을 더욱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것이 [[미군정]]과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었다. 어쨌든 [[백범 김구]]가 의도한 바는 같은 민족이 갈라지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었으나, 의도한 바와는 달리 북한의 [[김씨 왕조]]가 이를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변질시킨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한국이 [[이스라엘]]처럼 [[가해자가 된 피해자]] 위치에 서지 않은 것은 국력 부족과 분단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일 뿐이었다. 2019년 이후 한국 인터넷의 [[착짱죽짱]] 드립만 보더라도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중국의 전체주의, 패권주의('중화민족 부흥'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주의적이다), 반인권주의 태도의 비판은 마땅하지만, 자유주의적 관점의 비판이 아닌, 인종적으로 혐오하며 인명을 경시하는게 문제다.] 현재 일각에서 주장하는 [[탈민족주의]] 담론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지식인 사회에서,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반성하며 나온 것을 한국의 지식인들이 수입하였기 때문에, 서구열강 관점의 한계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서구국가들을 분석할때나 적합한 민족주의에 대한 근대주의적 주장[* 서유럽국가도 아닌, 유럽에서도 [[발칸반도]] 국가들 같은 특수한 상황에나 적용될법한 주장을 보편인양 주장하는 경우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이 [[탈민족주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살피면, 이 문제를 현재 한국의 지식인들이 주체적으로 소화해 접근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초기에 서구열강에 대하여 저항적 방어적 성격이었던 일본의 민족주의가, 민족주의 자체의 배타성이 결국에 공격적으로 발전하여, 일본의 제국주의가 되고, 한국이 제국주의로 변화한 민족주의에게, 피해를 입었기에,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세계시민주의]]나 [[시민 내셔널리즘]]으로 바뀌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아시아는 국가 생성 배경이 유럽과 매우 다르다. 유럽은[* 헝가리 등 몇개의 예외를 제외하면 유럽 언어들은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언어적으로 공통의 뿌리를 공유하며 심지어 언어 간의 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스페인 서부의 갈리시아 지역에서 쓰이는 갈리시아어는 스페인어보다 오히려 포르투갈어에 더 가깝다.] 이렇듯 민족 간의 애매한 경계와 공통 조상의 공유는 자연스레 민족주의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공통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좋은 기초가 된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양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민족주의를 꼽게 되고 이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 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민족주의라고 하면 [[나치즘]], 전쟁을 떠올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이와는 다르다. 동아시아는 민족 간, 언어 간의 경계가 매우 뚜렷하며 이러한 경계가 수천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왔다. 따라서 공통의 정체성 공유가 유럽에 비하면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강한 근거는 되겠지만, 민족주의로 인한 문제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로 압제당했던 역사적 경험으로, 궁극적으로는 민족주의가 필요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일본이 민족주의적 침략을 반성하지 않는한, 한국의 민족주의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예컨데 [[박경리]] 작가는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서구의 [[시민 내셔널리즘]] 개념도 어느 정도 논의되었는데, 일본제국이 민족동화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 혈연/인종적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시민 내셔널리즘]]은 묻혀버렸다. 한국은 통일신라 이후 하나의 국가로 [[고려]], [[조선]]을 거치며 오랜기간 단일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해체시키려는 의도로 "민족"이라는 것은 근대에 와서야 생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며 그 전까진 한국에 민족의 개념 같은건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민족"이라는 한자 단어자체는 근대에 생긴 단어이지만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개념이나 의식은 그 훨씬 이전부터 동아시아에 있던 개념'''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오드 아르네 웨스타드 교수는 '''한국에서 하나의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은 현대 nation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오래되었으며 [[중국]]과도 매우 다르고 [[일본]]에서 발견되는 것보다도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나라 없는 [[민족]], 나약한 민족의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광복을 맞은 이후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선 안된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21세기가 되어서는 점차 민족주의에 대한 의식이 옅어져 가면서 이것이 일부는 세대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특히 1990년대생들이 성인이 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대단히 옅어져서 오히려 [[국뽕]] 딱지가 과도하게 붙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특히 [[한류]]의 유행으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한국인들의 문화적 컴플렉스도 많이 극복되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로도 민족주의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고 오히려 적정 선에서는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강하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주변 국가들, 특히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 및 [[문화적 전유|도용]] 때문이다. 중국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2010년대부터 2020년대 기준으로 한국 문화가 그래도 인지도가 생긴 곳은 거의 구대륙(유라시아) 및 북미권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중국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일대일로|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개발이 미진해 한류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에 중국이 은근슬쩍 한국 문화들을 자기네 고유의 전통 문화인 양 속인 채 발을 먼저 들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소시지나 햄버거 등을 국적을 따지지 않고 향유하듯이 문화를 국경 없이 향유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세계적으로 서구권의 음식들은 딱히 국적을 따지지 않고 그냥 즐기는데, 서구권 그 어느 나라도 과도하게 '이건 우리네 전통 음식' 운운하며 홍보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전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한국에서도 민족주의가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것'과 '너희 것'이라는 구별 의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강하다. 한국이 진정으로 탈민족주의에 성공하려면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이 우선이며, 특히 중국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다시 언급하자면 한국에서 탈민족주의가 주류로 자리잡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국가가 바로 일본과 중국인 셈이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이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창궐하는 일뽕 [[역센징]]들과 [[자국 혐오]] 국까들의 여론몰이와 어그로들로 인해 오히려 민족주의화 되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까가 빠를 만든다|까가 빠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