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덜란드/종교 (문단 편집) == 가톨릭 == 명목상 네덜란드 최대의 종교집단. 하지만 실질 출석률은 여느 서유럽 국가들처럼 낮다. 또한 대다수가 노르트브라반트와 림뷔르흐, 그리고 동부 네이메헌 및 엔스헤더 근교 지역을 중심으로 몰려있다. 흔히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민중의 애국적 개신교 vs 친합스부르크의 외세적 가톨릭'으로 단순화되지만, 봉기 직전의 네덜란드는 압도적인 가톨릭 다수 지역이었고,[* 당장 [[에라스무스]]만 하더라도 교황청과는 갈등했을지언정, 교단 정체성이 가톨릭이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에라스무스식 인문주의와 개신교가 외견상 몇가지 공통점{{{-2 (스콜라학에 대한 반감, 성경 원문에 대한 관심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사자들도, 오늘날의 학자들도, 둘을 동일시되지 않는 이질적인 집단으로 본다. 아주 간단한 예시로, 토착어에 대한 관점에서도 둘은 완전히 정반대의 관점을 지녔었다.{{{-2 (개신교가 토착어 성경을 민족주의와 결부시킨 반면, 에라스무스는 토착어와 민족주의를 반대했고 국제어로서의 라틴어를 밀었다)}}}] 네덜란드의 개신교화는 독립의 원인이 아닌 독립의 결과로 생긴 정치적인 문제였으며, 이마저도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개신교와 가톨릭의 종교전쟁이라기보다는, 반합스부르크와 친합스부르크의 전쟁이었고, 당장 네덜란드 성상파괴운동만 하더라도 자신들을 반합스부르크와 선을 그었다.[* 칼뱅주의자들은 성상은 건드렸으나, 합스부르크 통치의 상징물은 건드리지 않았다. 반대로, 빌렘측에서는 성상파괴를 매우 혐오했으나 이것이 독립의지를 희석시킨 것은 아니다. 즉 성상파괴운동은 독립운동과 구분되는 별개의 운동이었다.] 16세기에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독립한 이래 국법으로 가톨릭을 금지하였으며, 이 조치는 무려 1853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뒤로 교계 제도가 회복되자 가톨릭국민당(KVP), 가톨릭 라디오 방송(KRO), Volkskrant 신문사 등을 조직하여 개신교 세력을 견제했다. 20세기에 진입하던 때 이미 개신교 비율이 감소 추세였던 반면, 가톨릭은 20세기 중반때까지 꾸준히 비율을 높여 1960년대 쯤에 약 40%로 정점을 찍었다. 다만 가톨릭의 비율 역시도 천천히 줄기 시작하여 2010년대에는 상기했듯 20%대로 감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