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스토리우스파 (문단 편집) == 근세 == 티무르의 침공 이후, 14세기 말 티무르의 공격으로 힘들어진[* 티무르의 서아시아 침공으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기반이 파괴되었고 학문적 손실과 함께 수도원들도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시리아 정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출처 : Oxford Handbook of Christianity in Asia] 신도들은 현재 [[이란]], [[이라크]], [[터키]] 3개국 국경인 하카라 신지로 피했는데, 이들의 대다수는 [[쿠르드족]][* 마르코 폴로의 기록에 따르면 그 당시 쿠르드족들은 다수가 시리아 정교와 네스토리우스 교회의 신자들이었고 일부가 무슬림이었다고 한다. 출처 : 실크로드학 사전]으로 주변이 온통 무슬림인 적대적인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네스토리우스 교단에게 닥친 절체절명의 과제는 생존이었고, 교단에서는 결속력을 유지하고 구심점인 총대주교의 사도 전승을 보존하려는 의도로서 총대주교를 선출에서 특정 가문에서 세습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총대주교는 혼인이 불허된 자리였기 때문에 숙질 계승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계승을 둘러싼 암투를 야기했고 그 결과 교단은 분열의 운명에 처했다.[* [[오스만 제국]]이 딤미들에게 요구하는 높은 세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이런 숙질 계승은 바꾸기가 어려웠다. 출처 : Oxford Handbook of Christianity in Asia] 16세기 초 교단은 총대주교직 계승 문제로 인하여 둘로 분열되어, 한쪽은 자파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로마로부터 총대주교 임명장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가톨릭]]과의 일치를 추진하는 신파와 전통적인 교단의 독립성을 고수하는 구파가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전반과 중반, 구파의 총대주교들은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가톨릭]] 교의를 받아들이고 그들 역시 교황의 임명장을 받게 되자 이번엔 신파가 다시 반가톨릭으로 선회했다. 이렇게 해서 구파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인 [[칼데아 가톨릭]](바빌로니아 교회)이 되었고, 신파는 [[아시리아 동방교회]]로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