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스토리우스파 (문단 편집) === 한반도 전래 논란 === || [[파일:경주 돌십자가.jpg]] || [[파일:경교 십자무늬장식_경주.jpg]] || || 경주 돌십자가 || 십자무늬장식 || 경교가 당을 거쳐서 [[신라]]와 [[발해]]에도 들어왔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에서 1967년 [[경주시]]에서 [[십자가]]가 발견되고,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음상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다. 형식이 기존 신라에 존재하던 불교 조각과 비슷한 것이야[* 일본의 카쿠레키리시탄들이 만든 성모상도 불교식으로 현지화된 것과 비슷하다.] 세계 어디든 그리스도교가 처음으로 전래될 때는 원래 현지에 있던 양식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현지화를 거치므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바이킹]]에게는 예수가 사슬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아프리카에서는 예수가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중남미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 외모로 그려지는 식이다. 즉 해당 유물이 한국 최초의 '성모상'이라면 다른 [[불상]]과 닮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들을 경교 유물로 추정하여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한국 전래를 훗날 천주교회가 전래된 조선시대 중후기가 아니라 1천 년 앞서 통일신라로 끌어올려 소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2293|#]] 그러나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에 소장 중인 이 '유물'(동[[십자가]] 문양, 성모상)은 학술적 발굴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24/2009042401063.html|참조기사]]) 일단 '''발견자가 우연히도 개신교 목사 겸 숭실대사학과장 김양선'''이다. 그가 [[경주시]]와 [[불국사]]에서 땅 위에 드러난 [[십자가]]와 성모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1967년 당시에 이미 사학계와 그리스도교계로부터[* 감리신학대 유동식 교수와 조향록 목사조차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헛소리라는 욕을 들어먹었고, 그 여파로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이 한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김 목사가 돌십자가를 발견[* 발굴이 아니다!]한 장소도 어느 곳의 암석 위였다느니([[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7082400209205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7-08-24&officeId=00020&pageNo=5&printNo=14109&publishType=00020|당시 기사]]), ([[신라]] [[불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불국사]] [[대웅전]] 석등 밑'''이라니 하면서도 정작 정확한 발굴 위치나 출토 상황에 대한 공개는 전무했다. 즉 '''우연히도''' 개신교 [[목사]]가 '''우연히도''' [[경주시]]에서 '''우연히도''' [[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 밑에서 1500여 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그리스도교의 유물을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적의 결과가 [[신라]]시대 [[그리스도교]] 유물이다. --우연히가 왜 이리 많냐?-- 발해에 경교가 들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발해 [[동경]]이었던 팔련성 제2절터 유적에서 발견된 삼존불(三尊佛)에 십자가 같은 것을 매단 목걸이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나, [[러시아]]령 [[연해주]]의 아브리코스(Abrikos) 발해 절터 유적에서[* 발해 때의 솔빈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십자가가 그려진 점토판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중국 랴오닝 성의 무순(撫順)에서도 수백 점의 십자가가 발굴되었는데[* 출처: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 다만 요동 반도를 발해가 영유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설이 나뉜다.] 이를 근거로 [[러시아]] 고고학계에서는 9, 10세기 발해에[* 9~10세기는 [[선왕]]에서 마지막 왕 [[대인선]]에 이르는, 발해 중흥기와 쇠퇴 - 멸망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경교)가 들어 왔다고 보고 있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http://contents.history.go.kr/mfront/nh/view.do?levelId=nh_010_0060|#]][[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1339&st_char=8&sk=|#]] 아울러 어쨌거나 남북국시대 유물로 인정하여 네스토리우스교가 9세기 이전에 한국에 전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떡밥]]이 돌지만, 이것이 종교로서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정말 [[그리스도교]] 계통 유물이라 해도 단순히 '외국의 장식품'으로 생각해서 물건만 들여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주에서는 [[신라 황금보검]]이나 여러 [[유리]]공예품 등 유럽에서 만들어 [[실크로드]]나 [[아라비아]] 상인의 바닷길을 따라 신라로 전래된 유물은 이미 많이 발굴된 바 있으며, 비슷한 예로 [[북유럽]]국가인 [[스웨덴]]에서도 [[불상]]이 발견된 전례가 있지만([[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3236|링크]]), [[바이킹]]이 교역품으로 가져온 것으로 추측할 뿐 [[불교]]가 [[북유럽]]에 도입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바이킹 불자설-- ~~거기까지 간 게 용하다.~~ 게다가 [[십자가]] '문양'이 곧 [[그리스도교]] 유물이고, 아이를 안은 어머니상이 곧 성모자상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십자가]]는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기 이전에도 보편적인 문양으로서 전세계적으로 애용되었고, [[불교]]에도 호법신인 [[귀자모신]]의 좌상이나 모자(母子) 불상이 있으며, 대지모신, 풍요, 다산, 자애를 의미하는 모자상은 고대에 특정 종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