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오프톨레모스 (문단 편집) === [[트로이 전쟁]] === >'나무랄 데 없는 [[펠레우스]]에 관해서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소. >그대의 사랑하는 아들 네옵톨레모스에 관해서는 나는 그대의 요구대로 모든 진실을 터놓고 이야기하겠소. >나 자신이 그를 속이 빈 균형 잡힌 배에 태워 스퀴로스에서 훌륭한 정강이받이를 댄 아카이오이족에게로 데려갔기 때문이오. >트로이아의 도시 주위에서 우리가 회의를 할 때면 그는 맨 맨저 말을 했고,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과녁에서 빗나가지 않았소. 신과 같은 [[네스토르]]와 나만이 그를 능가했지요. >또한 우리 아카이오이족이 트로이아인들의 들판에서 싸울 때면 그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나 떼 지어 있는 곳에 처져 있지 않고 누구보다 월등히 앞으로 달려나갔으며, 누구에게도 용기를 양보하려 하지 않았소. 그는 무시무시한 전투에서 많은 남자들을 죽였소. >'''하지만 나는 그가 아르고스인들을 지키며 죽인 모든 백성들에 관해 빠짐없이 이야기할 수도,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소이다.''' >이를테면 그는 청동으로 [[텔레포스]]의 아들 영웅 에우뤼필로스를 죽였소. 그리고 그자의 주위에서 한 여인의 뇌물 때문에 그자의 전우였던 수많은 케테이오이족이 살해되었는데 그자는 내가 본 남자들 중에서 고귀한 [[멤논]] 다음으로 용모가 가장 준수했소. >또한 우리 아르고스인의 장수들이 에페이오스가 만든 목마에 들어갈 때 그 튼튼하게 만든 매복처를 열고 닫는 모든 책임이 내게 주어졌는데, 다나오스 백성들의 다른 지휘자와 보호자들은 눈물울 닦았고 모두 아랫도리를 떨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가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뺨에서 눈물을 닦는 것을 내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오히려 그는 목마에서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자꾸만 간청했고, 칼자루와 청동이 달려 묵직한 창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트로이아인들에게 재앙을 꾀하고 있었소.''' >마침내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가파른 도시를 함락하자 그는 자기 몫의 전리품과 [[안드로마케|훌륭한 명예의 선물]]을 갖고 무사히 배에 올랐소. 그는 날카로운 청동에 얻어맞지도 근접전에서 부상당하지도 않았소. 아레스가 함께 어우러져 날뛰는 싸움터에서는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데도 말이오.' >[[오디세우스|내]]가 이렇게 말하자 준족인 [[아킬레우스|아이아코스의 손자]]의 혼백은 자기 아들이 걸출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수선화 피는 풀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소.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11권, 「505~540행」 이다 산에 있었던 [[헬레노스]]는 [[오디세우스]]에게 사로잡히고 아카이아 군의 승리 조건을 예언했는데, 이는 "[[트로이]]의 팔라디움을 훔쳐라", "[[펠롭스]]의 뼈를 트로이로 가져와라", "[[헤라클레스]]의 화살이 필요하다", "트로이의 대문의 천장을 부숴라",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아들을 참전시켜라"''' 였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외조부 리코메데스 왕이 다스리는 스키로스에서 자랐는데, 아카이아 군의 사절이 오자 리코메데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로이로 떠났다.[* 일설로는 이때 제시한 보상이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와의 결혼과 [[지참금]]이었다고 한다. 뒤집어보면 왕손일지라도 정식혼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이상, 왕위 승계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라리 강대국 공주와 결혼하여 부마로 들어가는 것이 그나마 유리한 선택지이다.]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리코메데스 왕의 장녀 데이다메이아)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숨어있을 때, 그에게 [[강간]]당해(혹은 눈 맞았거나) 네오프톨레모스를 임신했기 때문에 이때 네오프톨레모스의 나이는 단 '''10세'''.[* 후기 청동기 시대 동지중해 지방의 전쟁 관습 중에는 정복당한 지역의 왕이나 귀족들을 어린 소년의 손으로 죽임으로써 적에게 최대한의 모욕을 안기는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트로이가 함락된 뒤 트로이의 왕과 귀족들을 죽일 때 그들에 대한 모욕과 아킬레우스의 복수의 의미로 아킬레우스의 어린 아들에게 처형을 맡긴 것 자체는 당시 관습상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구약성서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지도자 [[기드온]]도 적장을 붙잡은 후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그들의 목을 베도록 했다가 적장들이 [[인성질|"이거 너무하지 않느냐?"]]라고 항의하자 손수 적장들을 참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이네이스]]에서는 체구가 작다고 묘사되지 않고 10세라고는 하지만 부친의 유전자를 받아서 선천적으로 큰 체구에 성장까지 빨랐다고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아이네이스는 어차피 [[베르길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의 주문 아래에 로마 건국신화를 만들어보려고 쓴 서사시이기 때문에 본인이 개인으로 남긴 연구 기록과도 모순되는 내용이 많다.][* 160 정도의 신장까지는 생각해 볼 수 있긴 하다. 무리수를 던지면 그보다 클 수도 있고. 하지만 고대인의 신장 문제도 있고 그보다는 더 작게 보는 편이 맞을 것이나, 또 너무 작은 것도 이상하니 적당히 상상하는 편이 바람직하겠다.][* 아예 불가능한정도까진 아니다. 도날드 트럼프의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도 10살에 175cm니 똑같진 않아도 절대 불가능하진 않다] 트로이로 가는 도중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예언에 언급된 [[헤라클레스]]의 활을 물려받은 [[필록테테스]]를 데리고 가기 위해 오디세우스와 같이 잠시 렘노스 섬에 간다. 필록테테스는 과거에 아카이오이족이 [[독사]]에게 물린 상처에 악취가 심해지자 자신을 버리고 간 것에 앙심을 품고 [[오디세우스]]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자신을 배신했던 장군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던 어린 네오프톨레모스의 설득에 그와 친구가 되고 함께 트로이로 가기로 한다.[* 필록테테스를 데려갈 때까지는 이제 막 전쟁에 참전해서 그런지 사람이 순진하게 나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에서는 처음에는 오디세우스의 계획에 따라 필록테테스를 속이고[* 필록테테스에게 자신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활과 화살을 빼앗았지만, 곧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필록테테스에게 활과 화살을 돌려준다. 필록테테스도 헤라클레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꿔 트로이 전쟁이 재참전한다. [[트로이]]에 도착한 네오프톨레모스는 [[오디세우스]]로부터 아빠가 쓴 무구를 물려받았고 어려도 무력만큼은 아빠의 피를 제대로 물려받아, 첫 출전부터 트로이의 여러 장수들과 병사들을 죽이고 아카이오이족을 고전시켰던 뮈시아의 왕자 에우리퓔로스까지 쓰러뜨리는 비범함을 과시했다. 전투에서 단 한번도 상처를 입은 적이 없다는 것을 보면, 아킬레우스의 아들답게 아카이오이족 전체를 통들어서도 손꼽히는 전투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막바지에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인 [[트로이 목마]] 작전에서 목마에 들어갈 정예로 뽑혔다.[* 트로이 목마에 누가 들어갔는지는 시인이나 저자들마다 여러 전승이 있는데, 네오프톨레모스는 [[오디세우스]], 아카마스, [[디오메데스]], 그리고 [[메넬라오스]]와 함께 모든 전승에서 목마에 들어간 영웅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내로라하는 영웅들조차 목마 안에서 무서워 벌벌 떨고 울었는데, 오직 네오프톨레모스만이 빨리 트로이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났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빠를 제대로 닮은 것. 이 때문에 오디세우스가 상당히 고생했는데 계속해서 살의를 참지 못하고, 목마에서 뛰쳐 나가려고 하는 네오프톨레모스를 그 때마다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긴 시간의 인내 끝에 목마가 트로이 내에 잠입하고 성문을 여는데까지 성공한다. 그리고 네오프톨레모스는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대학살을 자행한다. 트로이의 왕자 폴리테스의 [[니 캐핑|다리에 활을 쏘고]] 폴리테스가 안간힘을 쓰며 기어가는 것을 재밌어하며 따라가면서 조금씩 칼로 찌르고, [[프리아모스]] 왕에게 도달했을 때에 폴리테스는 상처로 사망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프리아모스 왕을 어떻게 시해했는 지에 대해서는 전승마다 다르다. [[파일:neoptolemus_pyrrhus_Louvre_F222.jpg|width=450]] '''▲ 아스티아낙스를 곤봉 삼아 프리아모스 왕을 때려죽이는 퓌로스''' [[베르길리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분노한 프리아모스가 [[투창]]을 던졌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이를 간단히 피했고 프리아모스를 죽였다. 전승에 따라서는 [[안드로마케]]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곤봉]] 삼아 왕을 때려 죽였다고 한다. 말로(Marlowe)의 기록에 의하면 프리아모스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무릎을 꿇고 자비를 빌었다. 이에 네오프톨레모스는 '''웃으면서 [[프리아모스]]의 가슴을 짓밟으며 칼로 손목을 잘라버리고 마지막엔 배꼽에서부터 목까지 갈라죽였다.'''[[https://books.google.com/books?id=Kc2_BAAAQBAJ&pg=PA139&lpg=PA139&dq=how+did+neoptolemus+kill+priam+cut+his+hand&source=bl&ots=HlMwZPqzYU&sig=I9HMd5SA2gwMssSOVkR77LU5l5k&hl=en&sa=X&ved=0ahUKEwi7quGgoKHZAhVRS6wKHSeFDFwQ6AEIbTAO#v=onepage&q=how%20did%20neoptolemus%20kill%20priam%20cut%20his%20hand&f=false|#]] 종전 후에는 헥토르의 아들이 성장하면 트로이 가문의 복수를 할 것이라는 예언과 [[오디세우스]]의 설득에 의해 네오프톨레모스는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서 내던져 죽인다.[* 작품에 따라선 [[오디세우스]]가 죽인다.] 이어서 트로이의 공주 [[폴릭세네]]를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영혼에게 제물로 바친다.[* 이를 묘사한 조각상이 [[http://dcl.elevator.umn.edu/asset/viewAsset/56e027a67d58ae2e318bb16a#56e027a77d58ae2e318bb170|강간당하는 폴릭세네(The Rape of Polyxena)]]]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세네카]]의 비극 《트로이 여인들》에서는 [[폴릭세네]]의 처분을 두고 아가멤논과 언쟁을 하다 칼을 뽑기까지 했는데, '난 이미 왕을 [[프리아모스|하나]] 죽였는데, 너도 죽일 수도 있다. 너가 마지막으로 싸웠던게 언제였나?'라며 왕중왕인 아가멤논에게 대들었다. 해설을 담당하는 코러스는 퓌로스가 아가멤논을 이겼더라도 목이 매달렸을 거라며 퓌로스를 어리석게 여겼다. 다행히 탈비디오스와 칼카스의 중재로 퓌로스가 원했던 대로 폴릭세네를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결정난다. 극중 미친 퓌로스라고 불릴 정도의 광기를 보였으나 정작 폴릭세네를 죽일 때는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당황했다고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에서도 폴릭세네를 죽일 때 잠시 망설였다곤 한다.] [[파일:Pyrrhus_and_Andromache_before_Hector's_Tomb.jpg|width=600]] '''▲ 퓌로스와 안드로마케 - 요한 루드비히 룬드(Johan Ludwig Lund) 작''' 네오프톨레모스는 전리품 분배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헥토르의 아내로 그 외에는 남자를 모르는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정복 최고의 전리품이자 그녀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달콤한 유혹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장수들은 누가 헥토르의 아내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들의 공을 늘어놓고 다퉜다. 하지만 여기서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의 공로를 내게 물려준다고 했으니, 자신이 안드로마케를 가지겠다고 한 순간 승부는 결정났다. 결국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하게 되는데, 이는 트로이의 완벽한 정복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라는 해석이 있다.[* 아킬레우스 일가가 프리아모스 일가에게 선사하는 굴욕이자, 자신들의 왕세자빈의 정절을 지키지 못한 트로이를 향한 모욕으로 해석된다. 성경의 [[압살롬]]이나 [[견훤]]과 [[경애왕]]비 등의 기록에서도 이런 퍼포먼스가 나온다.] 한편 이 때문에 안드로마케는 자신이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될 것이기에 [[아스티아낙스]]를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헤카베]] 역시 이를 노려 아스티아낙스의 성장과 복수를 기대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승에서는 [[아스티아낙스]]를 죽이는 역할은 네오프톨레모스였지만, 일리오스 낙성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인다.[* 사실 아스티아낙스의 처분을 두고 오디세우스와 메넬라오스가 대립하긴 했다. 오디세우스는 죽이자는 측이었고,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도 되찾았겠다,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는지 살려주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스티아낙스가 성장하면 복수를 할 것이란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아무리 전쟁통에 벌어진 일이고 [[제네바 협약]] 없는 고대의 일이라지만, 그래도 적군이나 트로이 왕가 사람들을 너무 잔혹하게 죽이다 보니 아버지인 아킬레우스보다 훨씬 더 악독하고 잔인한 살인광이라고 비난도 많이 받는다. 특히 프리아모스 왕에게는 아킬레우스도 예우를 갖춰 주었건만. 다만 네오프톨레모스가 사생아일지라도 그 당시에는 대부분 10살부터 전쟁에 충분히 참가하거나 왕위를 물려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로 취급했음을 생각하면, 나이 상관없이 아직 사회화를 덜 완료한 인간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성[* 성인들이 보이는 악의처럼 치밀한 것은 아니지만 유아동 역시 인간종이 태어날 때 거치는 발달시기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본능 수준의 악의와 기만 능력을 가면처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이 가장 서술된 작품들 중 하나가 [[파리 대왕(소설)|파리 대왕]]. 다만 그렇다고 유아동 시기를 무조건 소악마로 보는 것도 옳지 않으며, 그 악의를 잘 정제해서 건전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행위가 인간들 스스로가 부지런히 수행해야 하는 역할들 중 하나이다.]이 전쟁터라는 특수 상황을 겪으면서 아주 잘못된 방식으로 배출구를 찾은 것이다.[* 쉽게 말해 벌레 다리를 뜯고 놀면서 그게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아이한테 칼을 쥐어주면서 사람한테 휘둘러 보라고 명령한 것. 그것도 한 번도 얼굴을 모르던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들한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