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동자당 (문단 편집) === 창당 === 브라질 군사독재 시절인 1979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를 중심으로 트로츠키주의자를 비롯한 반스탈린주의자, 진보적 가톨릭 사제와 가톨릭 신자로 구성된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소수 정치집단에서 파생되었으며, 1980년 1월에 지금의 당명인 '''노동자당'''[* [[브라질 포르투갈어]]:'''Partido dos Trabalhadores''', 약칭 '''PT''']으로 개명했다.[* [[http://www2.fpa.org.br/manifesto-aprovado-na-reuniao-do-sion|출처]]] 1980년 2월 10일 브라질 대법원은 노동자당을 공인하였으며, 1982년 2월 11일 브라질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었다.[* [[https://web.archive.org/web/20101129060458/http://www.tse.gov.br/internet/partidos/index.htm|브라질의 등록된 정당 목록]]] 브라질 노동자당의 정당 등록이 이루어진 것과 같은 해 11월에 실시 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수는 낙선했지만, 하원에서 8석을 얻었다(득표율 3.5%). 이후로 1985년 지방선거에서 다수의 시장직 및 지방의원직을 배출했으며 이렇게 얻은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 재도입 및 사회복지제도 도입을 주창했고, 헌법에 반영되었다. 1988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 후 처음 열린 1989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가 출마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페르난두 콜로르]]에게 패배했다(결선 투표 득표율 38%). 이후로는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도 있었지만 페르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브라질 보수 정치세력이 힘을 잃으며 기회를 잡을거 같았는데, 1994년 의회 선거에서는 이전(1990년)보다 득표와 의석을 크게 늘렸지만, 동시에 행해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헤알 플랜으로 명성을 얻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의 물가상승은 외채난과 맞물려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브라질 당국에서 이를 틈타서 바가지를 씌우는 상인들과 기업들을 단속하거나 화폐개혁을 주기적으로 시행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매년 십수배에 달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면서 브라질 경제를 좀먹었다. 이때 사회학자&민주운동가 출신 정치인 [[페르난두 카르도주|카르도주]]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경제학자들과 함께 헤알이라는 가상의 단위를 채택해서 해당 단위를 바탕으로 해서 물가를 책정하도록 했는데 뜻밖에 이 조치가 큰 실효를 얻으면서 이, 가상의 화폐단위를 정식화폐로 승격(?)시키고 따로 화폐를 발행하면서 물가가 안정세를 되찾자 카르도수가 대권주자로 떠올랐고,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8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물론 카르도수도 브라질의 외채를 크게 증대시켜서 재임 말 IMF 외환위기까지 몰렸다는 점이나 무분별하게 민영화를 시행해서 빈부격차와 치안을 악화시킨 점, 실업률이 한자릿수대에서 10% 중반대를 웃도는 등 물가안정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시원찮았기 때문에 사실 브라질 내에서도 까이는 인물이기는 하다.] [[브라질 사회민주당|사회민주당]]의 [[페르난두 카르도주|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주]]에 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