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숙자 (문단 편집) === 열심히 살려는 노숙자에게 담보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기 === 2015년 11월 7일 [[채널A]]의 [[서민 갑부]]에서는 [[https://mnews.joins.com/amparticle/13342641|노숙자에서 억대 연봉 서민갑부가 된 박상기]]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공고 졸업 후 약 15년간 가죽공예가로 살아왔고 가죽공예 사업을 크게 벌였다. 하지만 IMF로 사업이 망하면서 10년 노숙자 생활을 해야 했다. 전국 각지의 교회를 돌아다니며 허드렛일을 하고 숙식을 해결한 것이다. 이 와중 오른손 손가락 일부가 잘려 나갔다. 2009년 한 교회 목사가 가죽공예 재능을 눈여겨보고 120만원을 빌려주면서 다시 좌판을 깔고 가죽공예를 해보라고 지원했다. 이후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2013년 월매출이 2,500만원에 이르렀다. 2012년 3월 8일 [[SBS]] 투데이에서 나온 김동남은 노숙자에서 벗어나 두부 기술을 배워 두부공장 사장이 되었다. [[https://mnews.joins.com/amparticle/2955575|원래는]] 아내와 딸이 있는 아파트 관리인으로 살고 있던 30대였다. 그런데 IMF로 직장을 잃고 가족과 헤어져 노숙자가 되었고,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 노숙인 쉼터 시설장이 자신과 함께 두부를 만들자고 설득하였다. 술을 끊고 두부 만드는 법을 공부해가며 매달렸다. 재활센터에서 500만원을 빌려 작은 [[두부]] [[공장]]을 하게 되었다. 처음 매출액은 연매출 700만원이라 되려 빚만 다시 늘어나서 절망에 빠져 자신이 소주를 마시며 [[노숙]]하던 [[수원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무렵에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라서 '사람들이 기뻐하는데 나는 여기서 소주 마시고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공장으로 돌아왔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재기에 성공. 2011년에는 연매출 5억급으로 작지만 알찬 공장을 마련하여 다시 가정도 갖고 사업가로 성공한 일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서 수원역에 나간 이 사람이 모자이크가 된 채로 역 여기저기에 나앉은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참 안쓰러운 모습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