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아 (문단 편집) ==== 국지적 홍수설 ==== 보수주의(문자주의) 교단이 아닌 그나마 진보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는 교단 혹은 기독교계 단체는 전 세계적으로 생명체와 문명을 멸절시킬 만한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으므로 노아가 살던 지방, 즉 아라랏산이 언급된 [[근동]]의 일부 혹은 [[소아시아]]에서 일어난 사건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점진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https://www.cts.tv/news/view?ncate=THMNWS18&dpid=257888|#]]점진적 창조론은 캐나다의 천문학자 휴 로스(Hugh Ross)를 필두로 데이비스 영(Davis A. Young)과 로버트 뉴먼(Robert Newman) 등이 주장한 이론이다. 우주는 수백억 년 전에 야훼가 [[빅뱅]]으로 창조했으며, 지구에서 수십억 년에 걸쳐 [[대멸종|창조와 멸종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인간(아담과 하와)을 창조했다 주장하며, 창세기 홍수는 국지적 홍수(local flood theory)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난 홍수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방주에 그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생물을 태울 수 있을뿐더러 전 세계적으로 홍수가 일어났다는 증거가 없다는 오류에 대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어 보인다. 얼핏 보면 창조 과학회에서 주장하는 의견보다 그나마 타당성 있어 보이고 과학적 오류를 해결하고 일반적인 과학 지식과 충돌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 주장 또한 [[교각살우]]식으로 모순적인 상황을 발생하고 있다. 만약 노아의 홍수가 국지적인 홍수고 노아가 살던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을 덮을 정도로 물이 차올랐다고 가정했을 때 홍수가 일어난 지역을 그 지역과 인접한 곳에서 바라본다면 물이 산 높이까지 차올랐는데 이쪽으로는 물이 넘어오지 않는 형태. 즉, 거대한 수벽(水壁)이 형성 된 [[코즈믹 호러]]스러운 광경이 연출된다.[[https://actheologian.com/2015/12/20/noahs-flood/|#]] 만약 창세기 7장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 깊고 넓은 거대한 [[분지]] 지형이 있다면 이런 가설 또한 만 번 양보해서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평원]] 지역이며, [[유프라테스강]]이 홍수로 인해 범람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 의견도 국지적 홍수의 의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라고 가정하고 쓴 것이다. 흑해 홍수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도 흑해 홍수를 홍수 설화의 기원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윤리적인 모순을 피할 순 없다. 노아가 살고 있던 지역 외 다른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을 텐데, 그나마 노아가 살고 있었던 지역과 인접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신이 노하여 옆 동네 살고 있던 사람들과 동물들을 홍수로 멸절시켰다'는 사실을 --거대한 수벽을 통해-- 알 수는 있어서 신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끼면서 교훈을 얻을 순 있었겠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부터 까마득히 먼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아무런 일도 겪지 못했고 아무런 일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교훈조차 느낄 수 없었다.]]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야훼를 믿고 있는 '노아'라는 남자와 일가족이 하필이면 그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뜬금없이 몰살당하게 된 황당한 상황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이 국지적 홍수로 성경을 해석한 후 다른 성경 구절 내용과 비교를 하자면 창세기 19장에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이 부족해서' 멸망당했다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는 반면,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의인이 있어서'''' 멸망당했다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 되어버린다. '만약 노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포교]] 활동을 열심히 해서 한 명이라도 더 야훼의 말씀을 따르게 만들었다면, 인명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굳이 점진적 창조론이 아니라 문자주의적 해석으로 접근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야훼는 이것을 포교 활동을 게을리한 노아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고 노아 역시 자신의 가족을 제외한 주변 이웃들이 모두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 홍수가 있을 것이고 방주에 타지 않은 모든 생물들은 멸절할 것 입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방주에 타고 야훼의 말씀을 따르시오'라고 주변인들에게 그 어떠한 경고도 내리지 않았을뿐더러 야훼 또한 타락한 인간들을 보며 한탄만 했고 타락하지 않은 노아를 소위 '의인'으로 간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창6:9 中)]했는데, 자신과 사상,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내 이웃이 얼마 후 필연적으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사람을 과연 '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 또한 피할 수 없다. [* 가령 어떤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시한 폭탄을 발견하고 30초 후 폭탄이 터질 것을 알고 있었는데, 자신만 혼자 그 장소를 벗어나고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아서 여러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죽음의 공포가 임박한 상황에서 용기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책임을 묻긴 어렵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단순히 야훼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이는 이후에 서술된 내용인 [[요나]]서의 내용[* 야훼를 믿지 않을뿐더러 이스라엘을 침략하던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네베로 가서 야훼의 말씀을 전하고 니네베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반대로 포교 활동을 하지 않으려는 요나에게 각종 벌을 내려주었다.]과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라는 구절과도 모순이 생기며,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창세기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네 이웃이 구원받지 못한 채로 죽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야훼의 말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꼭두각시를 의인이라고 칭하는가?'라는 의문점이 생긴다.--그러나 성경의 관점에서는 '''야훼=선'''이므로 야훼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선한 것이 맞기는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