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예(야구) (문단 편집) === [[SSG 랜더스]] === * [[조웅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 해 50경기 이상 60이닝을 소화[* 2000년 74경기 94⅓이닝, 2001년 59경기 76⅔이닝, 2002년 56경기 82⅔이닝, 2003년에는 마무리 투수임에도 65경기 77⅔이닝&30세이브, 2004년 55경기 79이닝, 2005년 52경기 60⅓이닝, 2006년 51경기 63⅓이닝, 2007년 64경기 74⅔이닝.]하면서 노예역할을 했다. 그나마 노예 중에서는 상당히 롱런했다는 점에서 이 선수의 내구도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채병용]]: 데뷔 2년차 시즌이던 2002년 시즌부터 [[강병철]] 감독 아래서 전천후로 굴려지며 141이닝에 7승 11세이브를 거뒀다. 이후 [[조범현]]-[[김성근]] 아래서도 전천후로 나왔고, 특히 2009년에는 팔꿈치에 복합 부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부상에 허덕이던 팀의 투수진을 책임지기도 했다. 2009년 시즌 후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고 제대 후에는 예전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6년 어느 정도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다시 전천후로 투입되어 68경기 86이닝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이승호(1981)|이승호]]: 데뷔 시즌부터 SK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고졸 신분으로 신인왕을 수상한 검증된 노예. 데뷔 이후 2년간 [[강병철#s-1|강백정]] 감독의 미칠 듯한 혹사로 부상을 얻어 2005~2007년을 통째로 날려 먹은 후 2008년에 복귀에 성공한 후, 2009~2010년을 다시 노예로 생활하였다. 2011년에는 새로운 노예인 [[박희수]]의 등장으로 노예 생활을 청산했다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다시 노예 모드로 돌아왔다. 2011 시즌 후 FA를 통해 롯데로 팀을 옮겼는데 2012년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1군과 2군을 오락가락하여 다시 노예 생활을 청산했다. 2012 시즌 후 NC에 특별지명되어 팀을 다시 옮기면서 특별지명된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기대를 받았지만, 2013년~2015년에 망하는 바람에 정작 그 선수들 중 가장 쓸모가 없었다. 결국 2015시즌 후 방출된 뒤 SK로 이적했다. 2016년에 퓨처스 리그에서만 뛰고서 시즌이 끝난 후 은퇴했다. * '''[[전병두]]: [[김성근|노예 하나는 잘 만드는 감독]] 때문에 선수생활 자체를 망친 케이스.''' [[두산 베어스|두산]]과 [[KIA 타이거즈|KIA]]를 거쳐 2008년에 [[SK 와이번스|SK]]로 와서 포텐이 터져 2009년~2011년 동안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로 다양하게 부려졌다. 하지만 부상으로 2011년 9월을 통째로 날렸는데, 한 달을 날리고도 51경기 92⅓이닝이나 소화했다. 3년동안 거의''' 5000구 가까이 던졌다.''' (4948구) 그리고 결국은 수술과 재활로 2012년부터 1군 경기는커녕 2군 경기조차 나오지 못하고 재활만 하다 2016년 10월 8일 정규시즌 최종전 선발로 등판해 [[김상수(타자)|김상수]]를 상대하며 은퇴경기를 치렀다. * [[고효준]]: 2002년에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입단한 후부터 SK로 팀을 옮기고도 2008년까지 존재감이 0에 수렴했던 선수였다. 그런데 2009~2011년 동안 선발, 불펜 가리지 않고 3년 연속 30경기, 100이닝을 넘게 소화하였다. 다만 같은 팀에 워낙 뛰어난 노예들이 많기도 하고 본인이 워낙 롤코 기질이 심해서 노예라고 동정받지는 못했다. 2012년 4월 30일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노예 생활이 끝났다. 소집해제 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1군 경기를 치루기는 했으나 시원하게 망했고, 결국 2016년의 트레이드 마감일인 7월 31일에 KIA로 트레이드됐다. KIA-롯데-LG를 거치다가 2022년에 SSG로 돌아왔다. * [[박희수]]: 2011년부터 새롭게 떠오른 좌완 노예로, 수술 경험이 있음에도 2012년 4~5월 동안 노예로 굴려지다 결국 퍼져서 6월 21일에 2군으로 내려갔다가 7월 초에 정우람과 같이 복귀했다. 이후로도 계속 구르다가 결국 9월 27일 33홀드를 기록하며 '''KBO 시즌 최다 홀드 기록을 갱신'''하였고, 결국 65경기 82이닝이나 소화하며 제대로 노예 인증했다. 2013년에는 부상 때문에 5월부터 등판했는데, 마무리 투수임에도 노예처럼 굴려졌다. 2014년에도 노예로 굴려지다 결국은 부상을 당하며 2군으로 내려가고 시즌 끝날 때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퓨처스리그에서도 꼴랑 2경기밖에 못 나왔다. 결국 2015시즌 8월에나 실전 경기에 등판했다. 복귀 후에는 1이닝 마무리로 관리받으며 노예 탈출에는 어찌어찌 성공. * [[이재영(야구선수)|이재영]]: 노예라는 개념이 없던 두산 베어스 시절인 2002년 ~ 2004년[*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2002년 67경기 97⅓이닝, 2003년 52경기 116이닝, 2004년 60경기 94이닝을 소화했다. 이중 2004년에는 시즌 막판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시즌을 조기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소화한 이닝이다.]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LG 트윈스]] 시절과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후 2010년, 2011년에는 별 활약이 없어서 이대로 묻히나 했지만, 2012년에 7월 11일부터 7월 17일까지 4일 연속&5경기 연속으로 등판을 하는 등 한시적으로 다시 노예로 돌아왔다. 2015 시즌 이후 팀동료 [[엄정욱]]과 함께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었다. * [[전유수]]: 2005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후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활약이 거의 전무했다. 2013년에 추격조로 시작했으나 박희수가 부상으로 1군에 없었던 데다가 [[채병용]], 이재영, [[윤길현]]마저 맛이 가는 통에 필승조로 승격되더니, 4월에 SK가 치룬 19경기 중 10경기, 5월에는 일주일에 4경기나 등판하는 등 SK의 신흥 노예로 떠오르기도 했다. 정우람이 군 복무를 하고 박희수가 부상으로 1군을 오락가락하다 결국 시즌 아웃된 2014년에는 팀이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등판하는 전천후 노예로 거듭나서 67경기(공동 4위) 84⅔이닝을 소화하며 2014년에 불펜 전문으로 뛴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하지만 팀이 아깝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데다가 노예로서의 존재감마저 차우찬한테 밀렸다. * [[박정배]]: 2005년에 두산에 입단했지만 두산 소속이었을 때는 듣보잡에 불과했다. 그리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로 와서 2012, 2013년에는 추격조로 나오다가, 2014년에는 전유수와 똑같은 이유로 노예가 되었고 역시 전유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굴려지며 전반기에 43경기(공동 3위)에 나왔다. 그리고 어깨 통증 때문에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재활군으로 내려갔고 결국 후반기에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 [[김주한]]: 2016년 SK의 떠오르는 신성 노예. 대졸 신인으로 입단한 첫 해부터 불펜 요원으로 투입되어 39경기 59이닝을 소화했고 불펜진이 거덜난 2017년에도 8월밖에 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55경기에 나와 65이닝을 소화하는 중이다. * [[페르난도 에르난데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