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예 (문단 편집) ==== 조선 노예제 사회설 ==== [[조선시대]]의 [[노비]]제에 관련해서 제임스 팔레, 에드윈 라이샤워 등은 조선 [[17세기]] 경 호적의 노비호가 전체의 1/3에 달한다는 점을 들어 조선을 노예제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 사람들은 조선이나 한국에 대해 크게 악감정을 가지지도 조선 사회가 크게 정체되었다고 보지도 않으며, 시민혁명 이전 남부 미국도 노예제 사회라고 본다. [[http://web.archive.org/web/20160924105642/http://orthodoxos.tistory.com/entry/%ED%8C%94%EB%A0%88James-B-Palais-%EA%B5%90%EC%88%98%EC%9D%98-%EC%A1%B0%EC%84%A0-%EB%85%B8%EC%98%88%EC%A0%9C%EC%82%AC%ED%9A%8C%EC%84%A4|팔레 교수의 조선 노예제 사회설]]. 주의해야 할 점은 노비 비율이 전체 인구의 30 - 40% 내외라고 주장하는 시기는 17세기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착각이 일어나는 이유는 조선의 호적대장이 매우 문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란한 이유로는 백성, 지역토호, 지방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발생했는데 지방관 입장에선 보고한 인구수가 줄어들경우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파견된 지방의 원래 인구보다 적게 보고했으며, 지역토호는 이를 도움을 주면서 탈세를했다, 한편 백성은 적게 보고된 인구수만큼 인두세 납부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백성들입장에서도 나쁜게 없었다. 반면 납세의 의무가 없는 노비는 그냥 호적에 기록됬기 때문에 실제 비율보다 10%정도 과하게 잡혀버렸다.] 팔레 교수의 견해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많은 서양인들은 조선의 노비제를 노예제와 다를 바 없는 제도로 인식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hk_014r_0010_0350|조선의 노비제도에 대한 프랑스 정치국 극동과의 보고]]. [[조선]]은 국가적으로 이를 운영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은 사적으로는 노비가 있었지만 국가에서 노비에 개입하진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12081#home|#]]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도 조선의 노비와 대동소이하거나 그 이하의 노예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으며 위정자들도 이들의 처지를 방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