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예 (문단 편집) === [[산업혁명]] 시기의 반전과 노예제의 효율성 === 이런 상황을 극단적으로 뒤집은 것이 산업혁명의 주역인 면방직 공업의 발전이었다. 이때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방직기, 방적기를 포함한 기계화가 이루어져 면방직 공업이 크게 발전하였고 이 때문에 목화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목화를 재배하는 데에는 농기계도 없던 시절이라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다. 때문에 노예제는 더욱 공고한 형태로 지속된다. 미국의 면방직 산업은 영국과는 달리 그리 발달하지 않았고 목화 자체를 수출하는 것이 주력이었다. [[1791년]] 당시만 해도 미국의 [[목화]] 재배량은 90만 kg 정도에 불과했으나 불과 10년 뒤인 [[1801년]]에는 2200만 kg에 달할 만큼 늘어났다. [[남북전쟁]]이 발생하는 [[1861년]]에 이르면 미국 수출품목 전체의 비중이 거의 60%에 달할 만큼 커졌다. 방적기는 목화에서 섬유를 빼내는 기계이고 방직기는 이를 이용해서 천을 만드는 기계이다. 둘 다 목화를 재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며 오히려 목화 수요가 크게 늘어나서 일손이 더욱 필요해졌다. 때문에 기계화로 인해 노예의 필요성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노예의 재산적 가치도 높아졌으며 이 때문에 많은 노예주들은 노예 해방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이후 다들 알고 있다시피 북부가 승리하여 노예는 해방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존재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역사학자 로버트 포겔은 1974년 경제이론과 계량적 방법을 사용해서 미국의 노예제도가 오히려 생산 측면에서 더 긍정적인면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면화 생산량, 진료 기록 등을 살펴본 결과 주인은 노예를 재산으로 여겨 최소한 가축 수준의 복지를 제공했을 뿐더러 오히려 그들의 처지가 북부의 노동자에 대한 대우보다 나은 수준이였음을 밝혔다. 노예제도를 통해서 얻는 이윤과 생산성으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노예를 포기할만한 유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포겔이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사실 그의 연구는 노예제도의 효율성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노예제도는 오히려 미국에 있어서 효율적인 제도였으며, 남북전쟁, 인권, 정치 등 경제외적 요인에 의해서 노예제도가 해체될 수 있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것이다. 또한, 포겔은 1949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에니드 카산드라 모간과 결혼해서 두 아이를 둔 사람으로 당시 반인종적 정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이다. 로버트 포겔의 주장은 경제적 원리에 의해 자연스레 도태될 노예제를 괜히 링컨 등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식의 주장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https://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4819.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