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장진 (문단 편집)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629212827822A3.jpg]] || || (출처 : 포토로) || || [[파일:external/samsunglions.com/img_history21_17_14.jpg]] || [[파일:external/appdata.hungryapp.co.kr/g3tssAd2haCgtl48cq9zIZBKtva.jpg]] || 1998년 11월 14일 부로 노장진은 [[최익성]]과 [[삼성 라이온즈/1996년#s-1.3|박태순]][* 1996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투수, 당시 1군 통산 성적은 1승 3패.]과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1998110418005001&mobile=false|트레이드]]가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로 오게 되었고 여기에서 프로 생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1999시즌 33경기(선발 30경기) 출장하여 188⅓이닝 소화하면서 15승 9패 평균자책점 4.35를 기록했다. 1999시즌은 KBO리그 사상 극심한 타고투저의 해였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삼성의 선발 에이스로 쏠쏠히 활약하며 잠재력을 대폭발, 한화 시절 사고뭉치 만년 유망주 이미지를 벗어나며 환골탈태하였고, 1999년의 노장진은 그야말로 구위 더 좋은 우완 [[차우찬]]. 사사구로 주자는 열심히 쌓지만 구위의 힘으로 실점은 최소화하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당시 삼성은 [[이승엽]], [[찰스 스미스]], [[김기태(1969)|김기태]] 셋이 합쳐서 122홈런을 치는 클린업 트리오를 보유하고 있었고, 1루 이승엽 - 2루 정경배 - 3루 김한수 - 유격 김태균으로 구성된 철벽 내야진이 있었기에 118사사구라는 기록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2000시즌 역시 전업 선발로써 28경기(선발 25경기) 출장하여 138⅓이닝 동안 11승 8패 평균자책점 4.29로 솔리드한 토종 선발로 삼성 선발 마운드를 지키다가, 2001시즌 초반에는 이제껏 누적된 혹사로 개점휴업하며 재활을 한 후 5월 말부터 1군에 제대로 합류했다. 해당 시즌도 선발로 마운드를 책임지긴 했으나, 이전 두 시즌 처럼 전업 선발이라기 보다는 스윙맨 역할도 간간히 해내면서 22경기(선발 15경기) 출장하여 85⅔이닝 소화하면서 7승 2패 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4.62를 기록했다. 한편, [[임창용]]이 2001년 선발로 전향한 후 2002년 역시 선발로 고정되면서 2001시즌 임시로 마무리를 맡긴 것 치고는 선방했던 [[김진웅]]을 당초 계속해서 마무리 투수로 쓰려 했으나, [[2001년 한국시리즈/4차전|2001 한국시리즈]]에서 심상치 않은 부진투를 결국 완벽히 극복하지 못하고 시즌 3번째 등판부터[* 놀랍게도 시즌 두번째 등판까지는 작년 정규시즌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더니, 때아닌 그 유명한 02롯데 타선에게 '''⅔이닝 5실점'''의 믿기 힘든 투구내용을 보인 뒤 급격히 무너지면서 4월 한 때 평균자책점이 19.29까지 치솟기도 했다.] 마무리로 상당히 어려운 모습을 보이자 구위가 그래도 제일 좋았던 노장진을 마무리로 임시 투입하면서 안정감을 찾았고, 이후 시즌 내내 마무리로 자리잡으면서, 63경기에 출장해 127⅓이닝 11승 4패 23세이브 평균자책점 2.54로 활약하였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멤버와 [[삼성 라이온즈]]의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프로 데뷔 처음이자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그러나 2002년 [[중무리 투수]]로 '''2천구''' 투구라는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했던 탓인지[* 2002시즌 일자별 기록을 보면 마무리 투수가 4이닝 이상 던진 경기만 '''6경기'''였으며 심지어 시즌 초반에는 한 번 선발로 등판하여 4⅓이닝을 던진 적도 있고, 7월 7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의 경우 DH 2차전 4:4로 비기고 있던 4회 1사 1루 상황에서 [[김진웅]]을 구원하여 아예 '''5⅔이닝''' 4피안타 1실점이라는 사실상 선발투수 급의 투구 내용을 보인 적도 있다. 더 엽기적인 것은 7월 7일 경기 직후 31경기 등판하여 63이닝(!)을 소화해 구단 마무리 중 최다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지경이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1019441|#]] 그럼에도 놀라운 스탯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8월 말까지 시즌 평균자책점은 무려 '''1.99'''를 마크했었고, 무려 12경기에서 2승 1패 8세이브를 올린 9월이 마무리 되었을 때 시즌 평균자책점은 '''2.20'''이었다. 다만 너무 지친 나머지 10월에 3경기 동안 8⅔이닝 소화하면서 7실점을 해버리는 탓에 시즌 최종 평균자책점은 2.54였다. 그러나 이 시즌 노장진은 연투 속에서도 최고 152km/h의 돌직구를 뿌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팀의 마무리로써 대활약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9승 10패 21세이브 평균자책점 4.12로 구원투수로 시즌 10패를 찍는 등 전년도에 비해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부진은 아무리 젊은 나이였다지만 관리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굴린 당시의 시대상이 원인이었다. 심지어 시즌 내내 부진했다기 보다도 전반기까지는 제법 준수했었는데 후반기들어 기어코 퍼지면서 이닝 소화력도 급감했고 구위마저 떨어지면서 사달이 나버린 것이다.] 결국 마무리에서 부진을 보이자, 이듬해 [[임창용]]에게 마무리 자리를 넘겨주고 다시 선발로 전향하게 된다. 그러나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환하였던 2004년에는 시즌 초부터 다시 잡음에 휘말렸다. 그 해 4월 7일 [[고지행]]과 함께 음주 사건으로 원정 숙소에서 '''무단이탈'''하여 크게 물의를 빚었다. [[김응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밤새 술 마시고 새벽 6시에 들어오다가 산책 중이던 김응용 감독에게 걸렸다고 한다. 당시 자체벌금 300만 원으로 비공개로 결정했는데, 노장진이 1주일 동안 무단이탈하면서 기자들도 알게 되어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95&aid=0000000646|파문이 커졌다고 한다.]] 그때 신인시절의 [[안지만]]도 옆에 있었는데 다행히 도망가서 징계를 면했다고 스스로 [[박명환야구TV]]에서 밝혔다. 결국 또 무단이탈이 원인이 되어 2004년 7월 12일 [[김승관]]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어 삼성과의 마지막을 좋지 못하게 끝내고 말았다. 이 때 그와 같이 이탈하였던 [[고지행]]은 2004 시즌 후 방출당했고 [[한화 이글스]]로 갔다. 그의 트레이드 상대는 [[김대익]]과 [[박석진]]이었다. 여러가지로 보면, 양쪽 모두 손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박석진은 2006년 다시 롯데로 돌아갔고, 김대익 역시 2007년에 은퇴했다. 노장진은 2006년 FA미아가 되어서, 김승관은 리빌딩 차원에서 2007년 방출됐다.][* 엄밀히 따지면 노장진이 무단이탈만 하지 않았다면 양 팀 모두 단기적으로 괜찮았다. 고질적으로 마무리 투수가 안 좋았던 롯데는 묵직한 구위파 마무리 노장진이 불펜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2005년 박석진은 삼성의 불펜에 뎁스를 더해주었으며 김대익은 2005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맹활약을 한다. 오히려 선수의 고질적이던 야구 외 사생활 문제로 롯데가 손해를 본 형국이고 삼성의 손해는 없었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노장진이 사고만 안 쳤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다. 관리만 하며 등판시키면 언제나 든든한 주전 마무리가 가능하며 제구력 기복은 있어도 혹사에도 불구하고 강속구 구사가 언제든 가능한 투수를 혹사 후유증으로 인한 장기간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 되며 몇 년 더 활약할지 의심이 제기될 투수와 성장세에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낸 30대의 외야수와 바꿀 팀은 없다. 노장진의 남다른 사고경력이 이런 트레이드를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다만 시즌 성적이 아닌 한국 시리즈까지 확대하면 삼성이 압도적으로 이득이었다. 박석진이 트레이드된 해에 병풍사건으로 필승조가 대거 이탈한 삼성의 불펜진을 받쳐준데 이어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활약했고, 김대익은 백업으로 출장하다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1점차로 지고 있을때 홈런을 날리며 삼성의 우승에 기여했다. 마지막 우승은 92년에, 99년 이래로 한국시리즈도 못가본 롯데에 비하면 차라리 박석진-김대익이 힘을 보태서 05년 우승을 차지한 삼성이 훨씬 더 나았던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