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태우/평가 (문단 편집) ==== 사죄 ==== '''그는 죽기 3년 전부터 아들 [[노재헌]]을 통해 사죄했다.''' 더불어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노태우 대통령 취임 당일인 [[1988년]] [[2월 25일]]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광주에 내려가 국립 5.18 묘지에 있는 [[이한열]] 열사 묘소에 극비리에 참배한 사실도 있다. 단 한 번도 사죄 안 한 [[전두환|전임자]]에 비하면 그나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니 전두환보다는 훨씬 낫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전의 행보나 그간 출간했던 회고록을 보면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5.18 민주화운동/학살|5.18 학살]]에 대해 왜곡으로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여튼 자신의 당시 처신이 경솔했다고 생각하긴 했는지 이후로도 잘못했다는 뜻을 계속 내비쳤다. 무엇보다 노태우는 유죄 판결 직후에 자신에게 부과된 [[추징]]금 2,628억 원 중 90%가량을 납부했고, [[2013년]]까지 나머지 금액도 분할 상환하여 마침내 전액을 완납했다. 이른바 '전재산 29만 원'이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추징금조차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전두환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후 [[2019년]] [[8월 26일]], 소뇌위축증으로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없는 중환자인[* 의사표현은 가능하다고 한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092615|관련기사]]] [[노태우]] 대신 장남인 [[노재헌]] 씨가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하면서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사죄드리고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겠다는 문구를 작성했다. 그리고는 노태우의 뜻이라고 밝혔다.[* 노재헌이 광주에 참배하지 말까요라 묻자 미동도 없었으나 참배하러 갈까요라 묻자 눈을 연신 깜빡였다고 한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826/97125387/1|#]] 그 이후 12월 초에 노재헌 씨가 다시 유족들을 만나 참회했다. 또 그 이후 [[2020년]] [[5월 18일]] 아들 노재헌 씨가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40년만에 '''"13대 대통령 노태우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라는 리본이 달린 조화를 헌화했다. [[5.18 민주화운동/학살|5.18 민주화운동 학살]] 책임자 중 한 명이 직접 제단에 헌화하고 사죄한 것은 노태우가 유일하다. 5.18 가해 당사자로서 유일하게 반성 의지를 지속적으로 내비쳤고, 사법부의 판결에 따른 죗값(추징금 납부)도 성실하게 치렀다는 점에서 전두환이나 다른 가담자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노태우와 사망자들을 제외한, 전두환 및 그 외 나머지 아직 정정한 [[12.12 군사반란]] 주모자들은 [[2019년]] [[12월 12일]]에 쿠데타를 기념해 모임을 가졌다.] 인터뷰에서 노재헌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밝혔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27588|#]] 노태우는 결국 투병 끝에 [[2021년]] [[10월 26일]] 사망했는데, 노태우의 마지막 사죄 행보에 대해서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받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린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그것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광주영령과 5.18 유가족, 광주시민을 위로할 수 없겠지만 그의 마지막은 여전히 역사적 심판을 부정하며 사죄와 추징금 환수를 거부한 전두환 씨의 행보와 다르다." 라고 평가[* 이로 인해 끝에 씨를 안 붙인 노태우, 혹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록 5.18 당시 신군부 명령체계 안에서 한 행동은 옳지 못하다 평가되나, 당장 존재감부터 적을 뿐 민주열사 고문에 앞장선 육군 내 내무전력 운용을 담당한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 인력들이나 [[대공분실]] 관련자, 강제연행 혐의를 받는 이들과 그 주체 중 하나인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위치의 [[조홍]]과는 달리 그만한 사죄라도 했기에 피해자들의 후손이 많은 지역에선 전두환과 달리 제명되었을지언정 공과를 인정받아 전 대통령 칭호로도 불릴 수 있게 된 것.]했으며,[[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02617184127079|#]] [[박남선]] 5.18 당시 상황실장[* 이전에는 유족대표라 쓰여있었으나 5.18 단체들도 박남선 본인도 유족 대표로 온 것이 아니라고 했으므로 변경.]도 빈소를 찾고 인터뷰에서 노태우는 전두환과 달리 사죄 표명을 해왔음을 인정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3389934|#]] 반면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끝내 사죄 없이 떠났다고 비판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10793298|#]][* 물론 비난은 피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반대측의 핵심 근거를 제대로 들어 본다면 '그럴 거였으면 회고록을 쓰기 전, 한창 정정할 시절에야 그냥 제대로 마음 놓고 사과하지 그랬냐'이다. 노태우가 사과를 했을 때는 이미 중병이 들어 거동이 어려웠기 때문에, 사죄의 대부분이 아들 노재헌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 물론 그나마도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직접 사죄하는 것이 훨씬 납득할 만했을 것이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노태우, version= 55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