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녹영(청나라) (문단 편집) ==== 해체 ==== 녹영의 전투력 역시 [[팔기군]]처럼 갈수록 쇠하기 시작했는데 문제의 시발점은 병역의 [[세습]]이었다.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군적을 물려받는 체제였는데 외부의 유입 없이 세습만 되다보니[* 무과가 실시되어 능력주의적 인재 등용이 이뤄지긴 했으나 무과에 붙어봤자 팔기군에 비하면 택도 없는 콩고물 때문에 인재풀의 질이 딱히 좋지가 않았다. 수십년 과거공부를 견뎌낼만한 명문가 금수저 자제들은 다들 유학을 공부해서 수재, 거인만 되어도 지역사회에서는 유지 행세하면서 잘 살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 자연스레 전투력은 하락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청나라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아편]]이 보급되면서 바닥의 정점을 찍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아편에 취한 자가 많았으며 주둔지에서 기율이 엉망이 되고 장사판을 벌이는 등 고인물은 썩는다는 것을 여지 없이 보이고 말았다. 이들은 [[백련교도의 난]]에서 크게 고전하면서 부실한 전투력을 그대로 드러냈고 [[태평천국의 난]], [[아편전쟁]]에서 패배를 연달아 당하면서 조정의 신뢰를 잃었다. 결국 [[광서제]]는 [[무술변법]]을 계기로 서양식 군대의 도입을 선언했고 녹영은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설령 녹영이 광서제 치세에 해체되지 않았다 해도, [[신해혁명]] 때 혁명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다시피 하여 그나마 남아있던 이들마저 죽어나가다가 결국 청나라의 멸망에 의해 자동적으로 해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분류:청나라의 군대]][[분류:병과/고대~근세기]][[분류:1898년 해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