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농가 (문단 편집) == 사상가 == 사회사상가로서 저명하였던 대표적인 농가의 인물은 허행(許行)이다. 허행은 춘추시대(기원전 770~403)의 등(藤)에 살면서 수십인의 문인(門人)에게 농업생산에 의한 자급자족의 생활을 주장하였다. 허행이 있는 곳으로 곧 송(宋)에서 진상(陳相)을 무리의 우두머리로 하는 수십인이 달려 왔다. 허행의 무리들은 농업신(農業神)이기도 하고 상고(上古)의 전설적인 제왕이기도 한 신농(神農)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을 기치로 삼아, 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할 것을 설파하였다. 그리하여 봉건지주의 착취나 [[상인]](商人)의 농민에 대한 이윤추구를 배척하였고 그에 저항하였다. 허행의 무리는 농업 생산에 필요한 [[공구]]를 생산하는 수공업자 역시 [[노동]]에 종사하는 자라 하여 그 존재의 의의를 인정하였다. 인간은 모두가 자신의 직접적인 노동에 의하여 자신의 생활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결과에 의한 [[잉여]](剩餘)는 각자 [[노동자]]의 소유에 귀속시킨다. 이렇게 해야만 천하가 고루 공평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맹자]] '등문공 상편'에 인용된 허행의 주장 중에는 모든 재화는 크기나 무게가 같으면 가격도 같도록 가격을 통제해야 하며 이로써 허황된 사치품과 이를 통해 상인들이 얻는 사기나 폭리는 사라지고 기본적인 기능만 갖고 있는 질박한 재화만이 남아 백성들이 평안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허행의 농가 사상은 공상적(空想的)인 사회사상에 가까운 면이 있다. 그러나, [[춘추시대]] 당시의 점차로 강고해져가고 있던 봉건지주들과 봉건 제후국들의 부국강병책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한 사상이다. 허행의 사상은 공산주의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고대 중국의 마르크스라는 별칭을 얻고 농가에 대한 연구가 늘어난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