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농지개혁법 (문단 편집) == 의의 == 농지개혁법에 의해 [[일제강점기]] 지주제가 사라지고 지주와 소작인 간의 대립을 줄이고 나아가 이 법안의 상정으로 북한 지역에서 주민들이 '''북한의 선전에 휩쓸리지 않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일단 농민들이 첫 수확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5월부터 개시한 토지대장 열람을 통해 '''최소한 정부가 인정한 내 소유의 땅이 있다'''는 인식 정도는 줄 수 있었고, 그 덕에 '''내 땅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 충성해야 할 이유'''를 주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해당 법이 없었으면 [[6.25 전쟁]]의 전황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수확량의 30%를 5년간 낸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일제강점기 소작농의 소작료가 대개 수확량의 50%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5년간 소작료 할인받으면서 땅을 거저 갖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해방 이후 3.7제가 시행된 것을 감안해보면 지주에게 낼 돈을 국가에 5년을 내고 땅을 갖는 것이니 농민들 입장에서는 훨씬 더 큰 이득이다.[* 일부 한국사학자들은 북한의 토지개혁과 비교하면서 이 유상몰수, 분배를 열등한 제도로 서술하기도 하는데, 이는 북한의 토지개혁의 실제 의도인 집단농장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전쟁 이후에 '''40%'''의 현물세를 거뒀는데, 이는 일제 때의 소작료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지주는 월남해서 사라진지 오래고 전쟁으로 나라가 박살난 판에 생산성 따질 겨를이 아니었으니 반발이 적었을 뿐이다......] 이미 [[소련]]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지가 한참이다보니, 당시에도 공산국가의 집단농장에 대한 이야기는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예전에는 다들 소작농이라 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농지개혁법으로 '''꿈에도 그리던 자작농'''이 된 상황에서 '''토지를 다시 빼앗기고 소작농이 되는 것'''의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운동권 중 주사파계열 NL이 [[마오쩌둥주의]] 이론에 기반으로 농촌에 들어갔지만, 자영농이 주류인 한국 농촌에 제대로 먹히지 못했고 그들이 만든 조직들은 그냥 농민이권 단체가 되었다.][* 이 집단농장은, 농민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농업의 기계화가 가능해진 이후에야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실제로 6.25 전쟁 초기 인민군이 점령한 38선 이남 지역에서도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기초한 토지개혁이 시도되었지만 농민들의 호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더군다나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를 내걸더니 이내 '''논작물 수확고의 27%, 밭작물 25%'''에 달하는 막대한 현물세를 강요하면서 남한 농민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실제 북한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을 보면 애국미(愛國米), 성출(誠出), 주둔소련군 식량이나 주둔비를 명목으로 뜯어가서 실제 수취율은 40%에 다다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토지개혁 이전의 수취율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었다. 출처는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이 당시 지주의 수취율은 미군정의 정책으로 2분의 1에서 3분의 1로 줄어든 상황이라 일제강점기로 돌아가는 상황은 농민들에게 납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상 국가에 조금 싼 소작 부쳐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북한의 경우 토지개혁에 반발해 지주의 자식들이 무장조직을 만들었다고 하며 협동농장의 경우 반발을 우려해 1, 2, 3등급으로 나눠서 하기까지 했는데도 농민들은 텃밭을 몰래 만드는 일이 생기고 심지어 황해도 배천에서는 수확물 분배 후에 집단으로 협동조합에서 탈퇴해버리는 사건이 터지기까지 했다. 그 공산당 덕에 '''공짜로 땅을 가지게 된''' 농민들조차 이렇다. 차라리 돈 좀 내고 내가 영구히 주인 되는게 더 낫다. 실제로도 수확량같은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에서도 차이는 확 난다.] 이럴 바에야 5년간 30% 내고 온전히 내 땅 되는 게 백배천배 낫다. 아무리 당대 교육수준이 낮았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셈조차 할 줄 모르면 농부도 못해 먹는다.[* 설령 이정도 계산도 못해먹을 정도로 무식하다 해도 50% 내는거에서 30%로 낮춰 준 쪽하고 그걸 또 (사실상) 50%로 거둬가는 쪽하고 구분도 못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본인은 복잡한 셈 못한다 쳐도 보통학교에서 이 정도 셈은 배운 사람은 마을에 하나 정도는 있었다.] 여기에 강력한 유상매입 유상분배에 대한 지주층의 저항이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에 터진 [[6.25 전쟁]]과,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면서 한때 국토 대부분이 인민군의 점령으로 질서가 붕괴되었던 개전 초기 남한 극도의 혼란덕에 지방의 지배계급 정점에 서 있던 지주들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이때 토지개혁에 저항하던 지방 지주들 상당수가 살해되었는데 인민군이 아닌 대부분 머슴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죽임을 당한 경우라고 한다. 또다른 지방 지주층이었던 사찰 역시 전쟁통에 대부분의 본건물 자체가 불에 타 사라지고, 사찰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사하촌을 지배할 근거도 사라져 사하촌의 토지가 국가에 환수된뒤 재분배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토지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하였던 식민지적 [[계급]]체계가 명목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소멸했다. [[6.25 전쟁]]과 농지개혁법으로 지주제는 소멸되었고 60년대부터 경제가 발전되기 시작할 때 대지주의 저항은 없었다. 정확히는 '''저항할 만한 대지주는 전부 전쟁통에 죽어버린 것.'''[* 설령 대지주들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농지개혁법으로 토지가 수용되는 대신 지가증권을 받고 더이상 대지주가 아니거나, 수용의 반대급부로 정부 사업 수주를 통해 [[기업인]]으로 탈바꿈 되었기 때문에 저항이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전후 간신히 자리를 잡은 '''자영농 집안의 잉여노동력이 후일 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도시로 상경해 산업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들의 다수가 고향집에서 소 팔고 논 팔아서 모은 돈으로 어렵게 공부해 서울로 성공하러 간 장남들이거나, 농사일 돕는 것 보다 도시에서 기술배워 공장다니면 돈 더벌수 있다는 말을 들은 차남,삼남들이었다. 농업,산업구조에 대해 연구하는 대다수의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 제국주의, 식민지 할 것 없이 초토화 되었던 전세계 국가들 중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빠르게 재건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로 이 토지개혁 성공을 꼽는다. 경제사학자들이 토지개혁 성공을 꼽는 나라들은 대한민국, 북한, 중국, 대만, 일본등이 있는데 이들중 공산주의 경제를 고수하다가 주저앉은 북한을 제외하면 모두 혼란시기 토지개혁을 통해 자영농 비중을 대폭 늘려서 초기 농촌에 쏠린 생존압력을 덜어주면서 국가 안정에 기여했고, 국가경제를 농업중심에서 제조업중심으로 완전하게 재편하는 과정에서도 비교적 부담없이 과거 농업경제에서 농지에 묶여 잉여인력으로 집안 농사나 돕던 사람들을 도시에 끌어올려 산업화 인력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하고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국가경제구조를 재편하고 산업화의 힘으로 경제를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이들 동아시아 국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식민지국가들은 독립이후에도 토지개혁을 실패해 국가가 세워졌음에도 극단적인 양극화가 해소되지 못한채 빈민들만 무차별적으로 증가해 심각한 국가발전 정체를 맞았으며 여전히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남미 국가들, 필리핀등 동남아시아,남아시아의 국가들이 있다. 한국과 비슷하게 [[남북분단]]+[[냉전]]의 최전선(?)+독재자의 상황에 놓여있던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남베트남]]이다. 이쪽도 한국처럼 [[토지개혁]]을 시도했지만 한국보다 기존 사정부터가 훨씬 더 나빴고 결국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이때는 북베트남도 이전에 토지개혁의 악영향으로 인해 남베트남으로 온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그런데 그렇게 토지개혁이 실패했던 남베트남조차도 '''통일 후 집단농장화가 그 이상의 대재앙으로 이어졌고''' 오히려 [[도이머이|남부발 개혁]]으로 판도가 뒤집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