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누미디아 (문단 편집) === 마실리 부족과 마사에실리 부족의 경쟁 === 누미디아라는 이름은 기원전 3세기경의 역사학자들의 기록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카르타고]] 서부 지역에 위치한 국가로 기록되었다. 누미디아는 크게 두 부족 파벌로 구성된 국가로, 동부 지역의 마실리 부족과 서부 지역의 마사에실리 부족이 각 파벌의 중심 세력이었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마실리 부족은 기원전 274년에 등극한 [[젤라센]] 왕이 누미디아 동부에 거주하는 부족들을 통합하면서 결성되었다고 한다. 마사에실리 부족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실해 언제 결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동부 누미디아의 부족연합의 성장에 자극받은 서부 누미디아 부족들이 자체적으로 연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젤라센의 아들 [[가이아(누미디아)|가이아]][* '갈라'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히포 레기우스 시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았다. 뒤이어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카르타고 국경 마을인 크로메리(Kromeri)에서 서쪽으로 스킥다까지 이어지는 영역을 확보했다. 그러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카르타고와 평화 협약을 맺고 장남이자 후계자인 [[마시니사]]를 카르타고에 인질로 보냈으며, 로마에 대항하는 카르타고를 위해 [[누미디아 기병]]을 지원했다. 이렇게 카르타고와 화해한 그는 서쪽의 라이벌인 마사에실리 족의 왕 [[시팍스]][* '사이팍스'라고 불리기도 한다.]에 맞서 전력을 기울였다. 카르타고의 지원에 힘입어 시팍스를 상대로 연이어 승리해 스킥다에서 오늘날의 물루야까지 확장했다. 가이아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도 카르타고를 지원했으며, 마시니사 왕자가 히스파니아에서 로마군과 맞서 싸우는 카르타고군에 종군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던 기원전 213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우세한 형국을 점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기원전 218년 집정관)|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 형제는 시팍스와 동맹을 맺어 카르타고를 견제하기로 했다. 그들은 [[백인대장]] 퀸투스 스테테리우스를 그에게 보내 누미디아 보병대를 로마 보병에 맞춰 훈련시키도록 했다. 시팍스는 로마식 훈련을 받아 강해진 군대를 이끌고 마실리 부족을 공격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그가 구원을 요청하자, 카르타고 원로원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키피오 형제를 상대로 고전하던 [[하스드루발 바르카]]에게 시팍스를 물리치라고 명령했다. 하스드루발은 일부 병력을 이끌고 아프리카로 건너간 뒤, 마시니사의 협조하에 시팍스를 상대로 승리했고, 마시니사가 이끄는 3천 명의 누미디아 기병과 함께 이베리아 반도로 귀환했다. 기원전 207년 가이아가 사망한 뒤, 동생 [[오잘케스]]가 왕위에 올랐지만 1년만에 고령으로 사망했다. 이후 오잘케스의 아들 [[카푸사]]가 왕위에 올랐지만, 가이아의 아들 [[마시니사]]가 불복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카르타고군에 종군하면서 수많은 활약을 했던 마시니사를 존경했던 병사들은 마시니사를 대거 추종했고, 결국 카푸사는 야전에서 패배해 전사했다. 카푸사의 추종자들은 그의 동생 [[라쿠마제스]]를 새 군주로 세웠지만, 그 역시 얼마 안가 마시니사에게 축출되어 시팍스에게 망명했다. 이리하여 마시니사가 마실리 부족의 왕이 되었지만, 내전의 여파로 인해 세력이 위축되었고 단합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한편, 히스파니아 평정을 완수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아프리카 원정을 계획했다. 그는 절친한 친구이자 부관인 [[가이우스 라일리우스]]를 마사에실리 부족의 왕 시팍스에게 보내 로마와 동맹을 맺자고 제안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한편 마시니사에게도 연락을 취해 자신이 상륙했을 때 그가 원군을 이끌고 합류하도록 했다. 그러나 카르타고 원로원이 마시니사와 약혼했던 소포니스바를 시팍스와 강제 결혼시킨 뒤, 시팍스는 마음을 바꿔 카르타고와 연합해 마실리 부족을 협공했다. 결국 마시니사는 영토를 모두 잃고 몇몇 부하만 대동한 채 사막에 숨어지냈다. 그러다 기원전 204년 아프리카에 상륙한 스키피오의 로마군과 합세했다. 그 후 시팍스의 마사에실리 부족과 [[하스드루발 기스코]]의 카르타고 연합군은 스키피오의 로마군을 상대로 [[우티카 전투]]와 [[바그라다스 전투(기원전 203년)|바그라다스 전투]]에서 맞붙었으나 전부 참패했고, 마시니사는 로마군의 지원에 힘입어 누미디아의 수도 키르타를 점령하고 시팍스를 생포했다. 그는 곧 약혼녀였던 소포니스바와 재회했고, 곧바로 결혼했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사로잡힌 시팍스로부터 자신이 로마를 배신한 것은 소포니스바가 자신을 유혹했기 때문이며, 그녀는 마시니사더러 카르타고와 손잡으라고 설득할 것이라는 경고를 접한 후 그녀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스키피오는 마시니사에게 소포니스바가 시팍스의 배신에 연루되었으니 로마로 끌고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그녀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마시니사는 자비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자신이 그녀를 처리할 테니 말미를 달라고 요청해 승인을 받아냈다. 그 후 마시니사는 충직한 하인에게 독약과 전말을 설명하는 편지를 건넨 후 소포니스바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소포니스바는 하인으로부터 이를 전달받은 직후 독약을 마셨다. 소포니스바가 자살한 뒤, 스키피오는 마시니사를 누미디아의 유일한 왕으로 선포했고 로마 원로원도 이를 추인했다. 그 후 마시니사는 로마의 충실한 동맹자로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맹세했고,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6천 명의 기병대와 4천 명의 보병대를 이끌고 스키피오와 합세해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를 격파했다. 카르타고는 한니발이 패하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로마와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그리하여 마시니사는 통합 누미디아 왕국의 초대 군주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