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능창대군 (문단 편집) === 후손 === 1615년 3월, 외가 쪽 친척인 [[능성 구씨]] 부인과 혼인했다. 그러나 능창대군이 같은 해 11월에 사망하여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해 [* 왕실족보인 선원록이나 선원계보기략 등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죽었다('''未娶卒''') 기록되어 있다. 또한 능창대군의 묘지명이 기록되어 있는 자료(택당집, 미수기언) 등에서도 결혼은 하지 않았고('''未授室無子''' - 택당집) 다만 첩이 있었고 그 첩에게서 딸이 있었다고만('''便房生一女''' - 택당집, '''有遺一女 外婦出也''' - 미수기언) 기록하고 있다.] 큰형 [[인조]]가 자신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능창대군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그러므로 능창대군의 후손들은 실제로는 인평대군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원래 인평대군파 출신이었던 [[남연군|남연군 이구]]와 그 후손들[* [[운현궁|운현궁가]]와 [[흥녕군|흥녕군가]], [[흥완군|흥완군가]], [[흥인군|흥인군가]].]의 호적에, 이들이 [[은신군]] 계열로 입적 되기 전 본 뿌리가 인조의 후손이 아닌 능창대군의 후손으로 적혔다. 단,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id/kpa_11702006_002|출처: 《조선왕조실록》 - 인조실록 38권, 1639년(인조 17년) 2월 6일 갑오 2번째기사.]]]과 《미수기언》과 《택당집》에 따르면 혼례 전에 [[노비]] 중 한 명을 첩으로 두었고 그 사이에 딸 하나를 두었다고 적혀 있다. 《선원록》에 따르면 딸 이름은 이영온(李英溫)으로 능창대군이 사망한 1615년에 태어났으며 유일한 친자식이다. 향주 이영온은 [[양천 허씨]] 허서에게 시집을 갔고 4남 2녀를 두어 대를 이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들이 진짜 능창대군의 후손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hpba&logNo=10579141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