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니카라과 (문단 편집) ==== 야구 ==== [[야구]] 인기가 많은 나라로 1891년에 Managua Base-Ball Club이란 야구팀이 창단될 정도이다. 인구 600만이 안되는 나라에 야구팀이 4500개, 야구선수로는 7만 명 가까운 이들이 등록되어 있다. 1905년 Boer란 팀이 창단되었는데 2012년에도 활동 중이다. 68년에는 자국 리그를 창설했으며 1972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 때 나타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데이빗 그린, 알 윌리엄스, 포피리오 알타미라노, 그리고 '엘 프레시덴테' [[데니스 마르티네즈]]다. 80년대에 들어선 윈터 리그 형식으로 시즌이 끝난 메이저리거나 마이너리거들을 끌어들여 리그의 인기를 높였다. 단 2023년 현재 자국 리그는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으며 규모도 작다. 연봉도 평균 6천달러에 주전들도 1만-1만 5천 달러로 적은 편이지만 니카라과의 1인당 GDP는 2천 달러 수준이라 니카라과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고소득.[* 참고로 비슷하게 윈터리그가 돌아가는 도미니카 공화국은 8천, 베네수엘라는 5-6천 달러 정도다.] 니카라과가 낳은 최고의 선수인 [[데니스 마르티네즈]]는 74년에 데뷔하여 97년까지 23시즌 동안 커터와 싱커를 앞세워 통산 245승을 올렸고 올스타 4회에 선정되었으며, 1981년 다승 1위, 1991년 방어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마운드의 대통령으로 군림하였다. 마르티네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워싱턴 내셔널스|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인 1991년 7월 28일 [[LA 다저스]]를 상대로 역사상 열세 번째의 [[퍼펙트 게임(야구)|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여 니카라과의 전설이 되었으며 1996년에는 실제로 니카라과의 국민들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자신이 거절하였다. 데니스는 "El Presidente"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며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던 해에는 임시 공휴일이 선포되고 동상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퍼펙트 게임 당시 다저스 투수인 마이크 모건도 4안타 완투했지만 '''수비실책으로 2실점'''하여 데니스 마르티네즈의 퍼펙트에 가려졌다.][* 오죽하면 이 선수의 이름을 딴 '''야구장'''이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박찬호 야구장이나 [[이승엽 야구장]]처럼 소규모 야구장이 아닌 15,000석 규모의 니카라과에서는 제일 좋은 야구장의 이름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로베르토 클레멘테]]다. 클레멘테는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니카라과와 무관하지만 1972년 11월 니카라과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자신의 돈으로 마련한 각종 구호물품을 싣고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이로 인해 클레멘테는 니카라과에서 영웅이 되어 그의 이름을 딴 야구장도 생겼다. 국제대회 성적에 관한 내용은 [[니카라과 야구 국가대표팀]]을 참조. 여담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과도 인연이 있는 나라다. 한국야구의 국제대회 출전 역사상 첫 우승 기록이 이 나라에서 1977년 치러진 [[IBAF 인터컨티넨탈컵]] 대회 우승이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77년|이 당시 대표팀]]은 [[김응용]] 감독이 이끌고 [[이선희(야구)|이선희]], [[최동원]], [[김재박]] 등이 맹활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