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콘 (문단 편집) === SLR 시대 === 1953년 카메라계에는 RF의 걸작 'Leica M3'가 등장한다. 포토키나에서 M3를 손에 쥔 니콘의 기술진은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극심한 좌절감에 빠지는데, 그동안 니콘이 해결할 수 없었던 RF의 7대 난제가 모두 해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돌아간 이들은 RF에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겠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에 니콘은 "RF를 중지하고 SLR에 사활을 걸겠다"는, 카메라 역사의 중요한 분기가 되는 결정을 내린다. 1959년 니콘은 자사 최초의 [[SLR]] 카메라 'NIKON F'를 발매한다. 이것이 바로 '''[[니콘 F 마운트]]'''의 시작이다. 비록 세계 최초의 SLR은 아니었으나[* 세계 첫 번째 SLR 카메라는 [[펜탁스]]. 비공식적으론 옛 소련의 스뽀르뜨(스포츠)] 그동안 SLR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부분들을 상당수 해결하여,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최초의 카메라로서 기자들의 많은 환영을 받았다. SLR은 찍힐 사진의 프레임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점점 RF를 시장에서 몰아내게 된다. 플래그십 모델인 니콘 F그레이드, FM시리즈, FA 등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니콘의 세 번째 플래그십 모델인 'F3'에 가서는 니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니콘의 인기는 198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카메라의 대명사로 한국 국내 신문사 기자들의 십중팔구가 F3를 애용하였으며, 이는 [[제13대 대통령 선거|1987년 대통령 선거]] 유세 사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후보자들 주위에 있는 신문기자들 모두가 F3로 촬영하고 있다[* 물론 F2, FA등도 있다. 외신 보도는 주로 F3P를 많이 사용했고.]) 또한 각종 매체에도 자주 쓰이는 소품이 된다. 유명 애니메이션인 [[에어리어88]] OVA에서 NP통신의 종군기자로 나오는 [[무츠기 고]](일명 록키)라는 인물이 사용하는 카메라로 모터드라이브가 장착 된 F3가 등장한다. 록키가 격추당하고 결국 탈출하지 못한 채 사막에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사막 위에 덩그라니 놓여진 F3가 홀로 찰칵찰칵 소리를 내는 장면이 클로즈업 될 때 니콘매니아들은 말 못할 감동을 느낀다고[[카더라]]. [[스티브 유|유승준]]~~스티브유~~의 히트곡인 [[열정]]에 나오는 카메라 셔터 소리도 F3에 모터드라이브를 장착한 것의 샘플링 사운드라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 각종 미디어에서 접하는 카메라 셔터 사운드는 모두 F3에 모터드라이브 장착된 것의 사운드 샘플링으로부터 내는 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참고로 부산의 지역언론매체인 [[국제신문]] 사옥 1층 로비에 F3가 유리전시대 안에 보관되어 전시되어있기도 하다. 80년대부터 새롭게 떠오른 화두인 자동초점(Auto Focus, AF)에 대응하는 카메라 회사들의 선택은 두 종류가 있었다. AF에 최적화된 새로운 마운트로 바꾸거나, 아니면 AF를 기존 마운트에 맞춰 개발하는 것이었다. 캐논을 비롯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전자의 방식을 선택하였지만, 니콘은 후자를 선택하였다. 단순히 마운트 결합이 맞는 것 뿐만 아니라, 렌즈-바디 작동의 상하위 대응성을 갖는 AF마운트를 개발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니콘의 엔지니어들은 그야말로 애로 사항이 꽃피는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이것은 그대로 개발 지연으로 이어져, 세계 최초의 실용화된 AF시스템 출시의 영예는 [[미놀타]]에게 돌아갔다.[* 1985년 α-7000 발매] 사실 최초의 AF SLR 카메라 발매의 족보가 좀 꼬이는 게 세계 최초로 '''시판된''' AF SLR카메라는 1981년 발매된 펜탁스 ME F였다. 그러나 이 카메라는 전용의 SMC AF 35-70 f/2.8렌즈[* 렌즈 측에 모터가 탑재되었으며, [[http://www.pentaxclub.com/product/product.main.php?typeid=B&companyid=pentax&productkey=9|렌즈 아래로 전원부가 툭 튀어나온 그야말로 못생긴 형태]].]가 없으면 AF가 동작하지 않는 반 쪽짜리 AF SLR 카메라였다. 다만 다른 K마운트 렌즈를 장착하면 초점이 맞았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초점 인디케이터의 지원은 얻을 수 있었다. 니콘 엔지니어의 회고에 따르면 "그런 식이라면 더 빨리 내놓을 수 있었지만,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런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니콘은 렌즈에 박스가 붙은 AF렌즈의 프로토타입을 1971년에 선보인 적이 있다.] 니콘은 1983년 F3AF를 발매하는데, 결국 원통형의 렌즈 안에 모터를 집어넣는데 성공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유에서인지 니콘은 이 방식을 버리고[* F3AF와 함께 발매된 전용 렌즈는 2종으로, 추가 렌즈를 발매하겠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즉 로드맵을 변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디에 모터를 넣는 방식으로 선회하여 F501을 발표하였다. 참고로, 이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 카메라 회사들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제로 기업들 간의 기술을 공유시키고, 해외 기업체가 일본 카메라 업체로부터 해당 [[라이선스]]를 사는 것을 막았다. 당시 '대한광학'이라는 국내 카메라 업체도 미놀타와 AF 기술 제휴를 하려다, 이에 가로 막혀서 목측 식 카메라라는 시대에 수십 년은 뒤떨어진 제품을 내놓았어야 했다.[* 코비카로도 알려져 있다. 셔터 부분(마미야와 제휴)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산화시킨 기종이기에 의미가 있다. 수출을 고려하여 초기형에는 테사 렌즈를 장착한 기종도 있다.][* 최초의 100% 국산화 기종은 삼성 퍼지줌 10-50.(발매 당시가 55만원)] AF 기술은 플래그십에도 적용되어 1988년 F4가 발매되었는데, 보도=니콘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키며 대박을 쳤다. 당시 한국에서도 시위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카메라가 F4인지를 보고 기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정도였다. 바로 전년 인 1987년 캐논은 EF마운트로 전환하기 위해 FD마운트를 버렸기 때문에 큰 원성을 사고 있던 차였다. 기존의 MF렌즈군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니콘의 인기는 엄청났고 이것은 'F5'로도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