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닛세이가쿠엔 (문단 편집) == 엄격한 규율 == 설립자 사후에는 학생들을 위한 평범한 기숙학교로 탈바꿈했지만 설립자가 생존했을 당시만 해도 규율이 업격하기로 유명한 학교였고 설립자가 죽은 뒤 어느정도 평정을 찾았지만 그래도 빡센 규율이 있었다고 한다. 당장 설립자가 살아 있었을 때는 [[일본 제국]] 시절의 [[일본군]]의 모습을 80년대에 재현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는데 그 실상은 아래와 같았다. * 밤 12시에서 새벽 4시까지 취침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주말을 포함하여 일절 자유시간이 없다. * [[라디오]]ㆍ[[텔레비전]]ㆍ[[신문]] 등 모든 오락거리가 금지되었다. * 군것질거리라고는 오로지 하루에 한 번 나오는 우유와 빵뿐이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오로지 물 외에는 우유와 차 빼곤 어떠한 사제 음료수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교장의 교육철학에 철저히 의거하여 걸레질을 끊임없이 하면서 땀을 흘리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이유로 전교생이 매일같이 걸레질에 걸레질에 걸레질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화장실의 변기는 맨손으로 닦아야 했다. 동영상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저렇게 해야 했다. * 학생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라고는 2~3주 [[방학]] 또는 [[졸업]] 이후였다. 그 이외에는 3년 동안 절대로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일요일]]도 예외가 없이 저 일과가 쭉 이어졌다. [[공휴일]]도 무시되었다. * '''이를 어기면 혹독한 매질과 [[얼차려]]가 행해졌다.''' 월 1회 면회가 가능했는데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금지물품을 반입하지 못하게 하려고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게다가 교장의 훈시 때 한눈을 팔면 불려나와 따로 [[얼차려|주의]]를 받았다. [[1980년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형제복지원]]이 있었다면 일본 [[미에현]]에는 바로 여기가 있었다. 본 문서 첫 번째 동영상의 1분 42초, 2분 시점에 복도 기둥에 걸린 한자 액자를 확대해서 보여주는데 각각 격할 격([[激]]) 자와 엄할 엄([[嚴|厳]]) 자이다. 엄격한(嚴) 지도 아래 격렬하게(激) 생활하란 뜻으로 걸어 두었던 모양이다. 정상적인 교육기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글자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학교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