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다미 (문단 편집) == 기타 == * [[8.15 광복]] 직후에는 한국에도 남겨진 [[적산가옥]]에 다다미가 상당수 존재했으나 현재는 적산가옥에도 남아있는 다다미는 극소수다. 한국에서 다다미가 사라진 최대 이유는 '''생활하기 불편해서'''이다. 전통 [[온돌]]방은 콩기름을 먹인 질긴 장판지를 구들 위에 바르는 콩댐[* 물론 전통 방식으로 해보면 완전히 마를 때까지 최소 며칠 걸리기 때문에 그냥 깔면 끝나는 현대의 PVC장판에 비하면 번거롭다.]이나 송진을 발라 방수작업을 하였고, 현대 온돌방은 비닐 장판을 깔아서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에게 방바닥 기본속성은 방수성 및 내수성'''이기 때문이다. [[재일 한국인]] 작가인 유미리의 소설 '8월의 저편'초이레 부분에서도 주인공이 온돌방 기름 장판 위에 흐른 아기 똥오줌을 치우면서 다다미를 디스한다. 그래도 보존 목적으로 남아있는 적산가옥에는 목적이 목적인 만큼 다다미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인 1941년에 완공된 부산 최고령 아파트인 청풍장, 소화장의 일부 세대에도 다다미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2&aid=0000294701|#]] * 197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에서 다다미를 만들어 일본에 역수출했다.[* 아현동에서 광화문, 종로로 가는 길목에 다다미 공방이 아직 남아 있다.] 1990년대부터는 중국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 일본인의 청결 집착을 다다미로 말미암아 아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배변 훈련하게 하여 일어난 '항문기 고착'으로 해석하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353&aid=0000009264|의견]]도 있다. * 시인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의 시구 "육첩방은 남의 나라"의 "첩"이 바로 다다미를 뜻하는 첩(疊)이다. 육첩이란 다다미 여섯 장 넓이를 뜻하며 대략 3평 정도의 공간이다. * [[다다미 넉 장 반]]은 다다미 4.5개 넓이로, 가장 작은 방을 뜻한다. * 위에 나온 [[다다미 넉 장 반]]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에서는 방의 크기를 말할 때 평수가 아닌 다다미의 장수로 말할 때도 있다. * 다다미가 깔린 방을 이를 때, 발음이 [다다미빵]이 되는 것에 이끌려 '다다'''밋'''방'이라고 표기하기도 하는데 외래어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으므로 발음은 그대로 하되 표기는 '다다'''미'''방'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 [[검도]], [[거합도]], [[일본 고류 무술]] 등의 [[일본도]]나 [[나기나타]] 같은 칼날 무기를 다루는 무술에서 [[대나무]]에 다다미 한 장을 말아서 [[시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시참 재료 중에 가장 비싸서 자주 사용 할 수는 없지만, 다다미와 대나무가 각각 살과 뼈의 역할을 하여 베는 감각을 느끼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 [[외래어 표기법/일본어]] 원칙에 따르면 '''다타미'''로 적는 것이 맞지만, 이미 '다다미'라는 표기로 굳어져 관용 표기로 인정되었다. [[돈가스]](돈카쓰)와 비슷한 이치. *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성 전투]] 당시 식량과 식수 부족에 고생했던 경험을 살려, [[구마모토 성]]에 식용 가능한 토란 줄기로 만든 다다미를 깔았다. 국내에서는 고구마 줄기로 잘못 알려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