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마스쿠스 (문단 편집) ===== 익시드 왕조 ===== 툴룬 왕조의 취약함과 달리 903년 칼리파 [[알 무크타피]]에 의해 파견된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이 하마에서 카르마트 대군을 격파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이후 많은 툴룬 조의 관리들이 이탈하였다. 마침내 904년 무함마드 휘하 압바스 군대는 시리아를 침공하였다. 혼란에 지친 시리아의 도시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그해 12월 무능한 아미르 하룬은 숙부 샤이반의 쿠데타로 살해되었다. 이에 디마슈크의 투구즈가 원정군에 투항하였다. 그리고 샤이반 역시 푸스타트에서 농성하다가 905년 1월 항복하며 툴룬 왕조는 멸망하였다. 그러나 디마슈크의 위기는 계속되었다. 906년 카르마트의 아부 가님 나스르가 [[바누 칼브]]를 선동, 시리아 남부를 습격하고 도시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수비대를 격파하고도 보급이 길어져 남쪽 티베리아스를 약탈하곤 철수하였다. 카르마트의 준동은 이듬해 장군 와시프가 카디시야에서 그 주력군을 괴멸시키며 최소한 시리아에서는 수그러들게 되었다. 압바스 조의 수복 후, 아흐마드 이븐 카이글락이 디마슈크와 요르단 총독으로 봉해졌다. 그는 이집트의 친 툴룬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후 동로마령 카파도키아를 습격하였다. 다만 후세인 이븐 함단의 반란 진압엔 실패하였고, 이를 진압한 무니스 알 무자파르의 권력이 커졌다] 한편 전향의 대가로 알레포 태수로 봉해졌던 투구즈는 궁정 음모에 휘말려 옥사하였고, 그 아들 무함마드는 역시 칼리파 [[알 무크타디르]]에 대한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이집트로 도주하였다. 현지 총독 타킨의 호감을 사 요르단 총독이 된 무함마드는 압바스 조의 권신 무니스가 [[파티마 왕조]]의 이집트 침공을 격퇴할 때에도 전공을 세웠다. 928년 그는 정식으로 팔레스타인 총독이 되었고, 그곳의 알 라시디는 디마슈크로 전임되었다. 그리고 931년 패권을 장악한 무니스의 배려로 무함마드는 알 라시디와 임지를 바꿔 디마슈크 총독이 되었다. 933년 3월 이집트의 타킨이 어린 아들만을 남기고 사망하자 무니스가 장악한 조정은 무함마드를 이집트 총독으로 봉하였다. 그러나 그해 8월 칼리파 알 카히르가 무니스를 살해하고 친정에 나서자 사태는 급변하였다. 알 카히르는 환관 부쉬리를 시리아, 이전 총독 아흐마드 이븐 카이글락을 이집트에 봉하며 무함마드를 꺾으려 하였다. 이에 불복한 무함마드는 부쉬리를 공격해 사로잡았고, 싸움을 회피한 아흐마드와는 협상하여 각각 시리아와 이집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타협하였다. 다만 935년 이집트에서 마그리비야 (베르베르), 마샤리카 (튀르크) 등 군부의 투쟁이 벌어지자[* 전자는 아흐마드, 후자는 무함마드 이븐 타킨을 지지하였음] 무함마드는 조정의 승인을 받아 수륙 양면으로 이집트를 장악하였다.[* 935년 8월 26일 푸스타트 입성] 파티마 왕조로 도주한 아흐마드는 그 칼리파 [[알 카임]]과 함께 돌아와 알렉산드리아의 마그리비야와 함께 푸스타트를 위협했으나 결국 격퇴되었다. 파티마 조를 막은 공로로 무함마드의 지배는 압바스 칼리파의 공인을 받았고, 그의 [[익시드 왕조]]는 시리아와 타르수스까지 확장되었다.[* 이후에도 압바스 조는 최소한 시리아라도 수복하려 했으나 무함마드는 그럼 파티마 칼리파와 혼인 동맹을 맺고 그 종주권을 인정하겠다며 협박하여 무마시켰다. 파티마 왕조 역시 당시 내부 반란으로 이집트에 신경쓰지 못했기에 이집트는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대장군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는 침공을 감행하였다] 939년 가을 압바스 조의 권신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가 침공, 시리아를 지나 남하하였다. 다만 펠루시움 (엘 파라마)에서의 전투 후 양측은 라믈라를 경계로 시리아를 분할하였다. 이로써 디마슈크는 다시 압바스 조의 지배 하에 놓였다. 이듬해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는 재차 남하하였고, 엘 아리슈에서 익시드 군을 격파하였다. 무함마드는 그를 기습하여 디마슈크로 몰아내었으나, 그를 추격하던 동생 후세인이 전사하였다. 이어진 교착 상태에서 양측은 재차 협상에 나섰고, 양측의 결혼 동맹과 함께 무함마드는 14만 디나르의 연공을 대가로 현상 유지에 합의하였다. 다만 942년 함단 왕조에 의해 이븐 라이크가 암살되는 혼란을 틈타 무함마드는 그해 6월 디마슈크와 시리아를 수복하였다. 944년 칼리파 알 무타키의 [[라카]] 피신과 함께 함단-익시드 왕조는 알레포를 두고 다투었는데 결국 그해 10월 전자의 알리가 도시를 차지하였다. 이후 홈스를 차지한 알리는 945년 2월 디마슈크를 점령하였다. 다만 시민들의 반발로 그는 축출되었고, 곧 친정에 나선 무함마드는 알리를 격파하고 기존 영토를 준수하는 대가로 그에게 연공을 납부하는 협정을 맺었다. 툴룬 왕조에 이어 이집트-시리아 왕조를 재건한 무함마드는 946년 7월 사망하였고 아들 우누주르가 계승하였다. 그 직후 알리는 재차 디마슈크를 점령했지만, 12월 익시드 조의 흑인 환관 출신 장군 카푸르의 반격으로 축출되었다. 이듬해의 전쟁에서 카푸르는 945년처럼 알레포까지 점령하며 승리하였다. 다만 그때처럼 시리아 남부에 만족하는 휴전을 맺었고, 이 경계는 향후 2세기간 시리아를 양분하게 되었다. 한편 우누주르, 알리 형제의 치세 동안 실권자로 행세하던 카푸르는 966년 후자가 사망하자 스스로 아미르가 되었으나 968년 4월 사망하였다. 그후 알리의 아들 아흐마드가 즉위했으나 연이은 흉년으로 인한 경제난, 재상 자파르와 군부의 대립 등 혼란이 이어졌다. 그 틈을 노려 카르마트 지도자 하산 알 아삼이 시리아를 침공해 디마슈크를 함락하였다. 그해 10월 그들은 반격에 나선 팔레스타인 총독 하산을 격파한 후 라믈라를 약탈한 후에야 철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