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마스쿠스 (문단 편집) === 상고대 === [[파일:상고대 다마스쿠스.jpg|width=600]] 아람인들의 다마스쿠스 시가지 범위와 로마시대 성벽 도시가 형성되던 기원전 2000년 무렵의 디마슈크는 셈어족인 [[아모리]]인 계열의 카트나가 지배하고 있었다. 북쪽의 얌하드, 동쪽의 마리와 함께 시리아를 삼분하던 카트나는 기원전 1700년 무렵 전자와의 경쟁에서 패하여 쇠퇴하였다. 이후 [[미탄니 제국]]과 이집트가 시리아를 양분하며 카트나는 차례대로 그 속국이 되었고, 그동안 시리아에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출현하였다. 그중 디마슈크는 기원전 145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세 3세]]의 테베 카르나크 신전 기록에 '타므스쿠'로 기록되었는데, 도시의 문서상 첫 등장이었다. 100년 후 작성된 아마르나 서신에선 '디마스쿠'로 기록되었고, 비르야와자라는 [[가나안]]인 국왕명도 등장한다. 그 후 이집트와 [[히타이트 제국]]이 시리아를 두고 경쟁하였고, [[카데시 전투]] 이후 히타이트 국왕 무와탈리의 동생 핫투실리가 디마슈크의 총독이 되었다. 다만 기원전 1259년 평화 협정에 따라 디마슈크 일대는 이집트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이집트의 통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50년 만에 [[바다 민족]]의 침공을 겪으며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전환되는 대혼란기가 도래한 것이다. 다만 전쟁은 주로 시리아 북부와 해안에서 벌어졌고, 그동안 디마슈크는 상대적 안정을 누리며 새로운 거점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성경 창세기 14장에 '다메섹'으로 등장하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향하기 전 도시를 다스렸다고 기록하였다. 기원전 11세기 무렵 시리아 일대에는 셈계 [[아람인]]들이 이주해 왔는데, 그들은 기존의 유목 생활을 접고 도시에 정착하였다. 아람어로 '디마슈쿠'로 발음된 디마슈크 역시 그중 하나였다. 도시를 무혈 접수한 아람인들은, 여태껏 별로 개발되지 않은 구타 오아시스의 농업적 가치를 알아보고 바르다르 강을 활용한 수로 건설을 통해 일대를 비옥하게 만들었다. 이때 형성된 배수 체계는 로마와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보완을 거쳐 현재까지 디마슈크 구 시가지의 용수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