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카히토 (문단 편집) === 츠노다 사건 === [[중국|지나]]파견군 총사령부에서 참모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와카스기'라는 가명을 썼으며, 그의 정체는 극비에 부쳐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황족임이 거의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이때 [[중국]]통이었던 통역 키무라 타츠오(木村辰男)로부터 [[중국어]]와 관련 정보를 배워둬서 타계 직전까지도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이후 [[대본영]] 참모로 전출되면서 귀국한다. 귀국한 뒤 전쟁 종결을 모색하는데, 바로 윗 형인 노부히토 친왕, 동료인 츠노다 토모시게(津野田知重) 소좌와 함께 [[도조 히데키]] 내각을 타도하기 위한 쿠데타 계획(츠노다 사건)을 세웠다. 이 쿠데타 계획의 골자는 '주전파'로 분류된 [[도조 히데키]] 이하 [[일본군/인물|일본군]] 장교들을 처단한 뒤 다카히토 친왕이 지나파견군 총사령관에 취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쿠데타 계획의 과격함에 놀란 다카히토 친왕은 이를 막기 위하여 헌병대에 자수해버렸고, 그에 따라 츠노다 소좌도 체포되어 쿠데타 계획은 미수로 그친다.[* 일단 군인 신분으로 군부를 뒤엎는 것 자체가 군인은 천황에 명령에 복종하라는 것을 거부하는 반역인데다가, 노부히토와 다카히토가 마음만 먹으면 황위 계승을 직접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당시 기준으로 승계 서열 4~5위에 1위와 2위인 아키히토랑 마사히토는 미성년자, 3위이자 그들의 친형인 야스히토 친왕은 병으로 요양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 쿠데타가 실현되었으면 황실 내 대규모 권력투쟁으로 이어졌을 확률이 매우 높다. 실제로 전후 히로히토가 강제 퇴위당할것을 고려해서 황족 한명을 차기 천황으로 옹립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다카히토 친왕이 이 사건에 관여한 것은 분명했지만 주도자들 중 하나가 황족, 그것도 [[쇼와 덴노]]의 동생이라는 지위 높은 황족이 관여되어 있어서, 자칫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상당히 큰일이 일어날 게 뻔했기에 불문에 부쳐졌다. 1944년 9월에는 다카히토 친왕이 본인의 지원으로 육군기갑본부로 전출되었고, 츠노다를 비롯한 관련 장교들도 가벼운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러한 까닭인지 1945년 4월 큰형인 쇼와 덴노와 면담을 요청했을 때는 '뭔 말을 하려는 건가??'라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알려진다. 근데 도조나 기시한테는 알리지 않았다. 종전 당시 계급은 [[일본 제국 육군|일본 육군]] [[소좌]]으로 항공총군 참모직에 있었다. 그리고 훗날 이걸 안 [[기시 노부스케]]는 >'''이 천하의 역적 놈들!! 내가 네놈들[* [[노부히토 친왕|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다카기 소키치, 츠노다 토모시게, 히라바야시 모리토(다카히토가 헌병대에 자수할 당시 헌병 사령관.)]을 교수대에 올려주마!''' 라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만약 전하께서 묵인만 하셨다면, 너와 너의 친구들은 그 자리에 없었을 거다.''' 라는 츠노다 토모시게의 조롱 섞인 대꾸만 들었을 뿐,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못하였다. 츠노다 토모시게는 패전 후 일본 과학기술진흥재단에 일하게 되었는데, [[미군]]이 레이더망으로 쓰던 주파수 대역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허락이 떨어지자 그 대역에다 TV방송국을 차리게 된다. 그리고 이 방송국이 훗날 덕후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긴급 방송 없이 기어코 정규 방송을 내보내고는 걸로 유명해지는 --용자-- 방송국 [[테레비 도쿄|TV 도쿄]]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