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 (문단 편집) === 설립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범정장형.jpg]]}}}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혜당조희재.jpg]]}}}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2345f, #045195, #045195, #02345f);" {{{#fff '''단국대학교의 설립자 범정 장형과 혜당 조희재'''}}}}}} || * [[독립운동가]]인 '''범정 [[장형(독립운동가)|장형]]'''[* 본명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9356|장세담(1889~1964)]],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으며,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안동과 봉천을 중심으로 국외에 있는 청년들을 보호하는 데 힘썼고, 심양 등지에서 국내의 청년들을 서간도에 위치한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국내 전역에서 한의사 활동을 하며 군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주석에게 전하다가 체포되었다. 1932년경 길림성 반석현에 이주해 정미소를 운영하며 창고에 쌀을 가득히 쌓아 놓고 그 쌀을 중국인들에게 팔아서 판매한 돈을 가지고 만주에 가서 무기를 구입하는 일을 전담하였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핵심 인물로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중 서울에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자, 학업을 중단한 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범정 장형 선생은 [[신흥무관학교]](현 [[경희대학교]])의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신민회]] 및 특무 공작 활동을 했고, 광복 직전까지 [[독립운동가]]들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범정 선생은 [[광복]] 이후, ''''새 나라에 새 민족대학을 세우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을 바탕으로 해방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4년제 대학인 [[단국대학교]]를 설립한다.''' 자세한 내용은 범정 [[장형(독립운동가)|장형]] 문서와 [[단국대학교/역사]] 문서 참조. * '''혜당 조희재'''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박기홍''' 선생의 배우자다. 범정 장형 선생이 단국대학교 설립의 뜻을 밝히자, 역시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왔던 혜당 조희재 선생은 흔쾌히 자신의 토지 80만 평과 재산을 쾌척하였고, 범정 장형 선생도 그의 조부가 가지고 있던 임야를 매각하여 보탰다. 이는 단국대학교 재단 설립의 기반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