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제2절 국가와 민족의 재흥 ==== 단국대학을 설립한 또 다른 정신이 있다. '국가와 민족의 재흥'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단국대학이다. 35년 여에 걸친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우리민족이 추진할 과제가 있었다.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과 더불어, 국가와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단국대학은 바로 이러한 과제, 즉 '국가와 민족의 재흥'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범정은 설립 당시 단국대학을 설립한 이유에 대해 직접 언급한 일이 있다. 범정이 언급한 내용을 『단대학생신문』은 「단국대학을 세우고 나서 - 국가민족의 재흥에 기여」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 나는 청년시대에 한국멸망의 비운을 당하여 분개가 극한 중에 조국독립 회복의 열망이 흉중에 불타서 내외각지로 독립운동에 분주한지 40년에 독립은 회복되지 못하였으나 오직 심신의 단련 사회정세의 통찰이 있었다. > 해방 이후 우리민족은 불행히 분열의 비경에 빠져서 국가의 독립이 회복되지 못함을 볼 때에 나는 다시 통탄비애를 느껴 이것이 비록 세계대세의 영향이었다 하나 실로 우리 민족의 실책이 다대한 것을 알았다. > 나는 연내에 시세를 정관하다가 이번에 결심한 바 있어 곧 청년의 양성, 동지의 규합으로 국가민족의 재흥을 실현하기로 하였다. 마침 전일의 구우 고 박기홍씨의 부인 혜당과 그 딸 박정숙씨가 거대한 재산을 가지고 우리 국가건설의 과업을 일역이라도 맡아 보겠다는 거지(巨志)를 품고 있었다. 나는 조희재 여사와 누차 협의한 결과 단국대학을 설립하기로 하였으며, 그 후 조희재 여사의 열심과 동지들의 협력으로 기어코 단둑대학은 설립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단국대학이 설립되자마자 조희재 여사가 별세하고 지금은 박정숙씨와 더불어 내가 그 경영에 당하고 있다. > -------- > - 『단대학행신문』 제1호, 1948년 3월 1일자, 「단국대학을 세우고 나서 - 국가민족의 재흥에 기여」 이 글 속에는 단국대학을 설립한 이유와 정신이 배어 있다. 범정은 청년시절에 대한제국이 망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국독립에 대한 열망을 안고 국내외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아직 국가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 대해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거이다. 국가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났지만, 또 다시 미군정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범정과 혜당이 단국대학을 설립한 데는 뜻이 있었다. '국가와 민족의 재흥'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국가와 민족의 재흥'을 도모하는 일, 범정은 이를 제2의 독립운동으로 여겼다.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청년인재의 양성이었다. 청년인재를 양성하여 '국가와 민족의 재흥'을 도모하고자 설립한 것이 단국대학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