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제2절 전문부의 병설 ==== || [[파일:김구단국대3.jpg|width=100%]] || ||[[파일:김구단국대4.jpg|width=100%]]|| || {{{#ffffff '''단국대학교 1회 졸업식에서 축사 중인 백범 선생'''}}} || 단국대학은 개교 당시 단과대학이었다. 1946년 2월 대학에 대한 규정으로 '대학령'이 공포되었는데, 이에 의하면 대학의 수업연한은 4년 이상으로 하고, 학부수에 따라 단과대학(College)과 종합대학(University)으로 구분하였다. 단국대학은 개교 당시 법정학부(정치학과, 법학과)와 문리학부(사학과, 수학과, 물리학과)의 2개 학부에 5개 학과로 이루어진 단과대학이었다. 2개 학부와 5개 학과로 개교한 후, 별도로 전문부를 병설하였다. 미군정에 의해 교육제도에 대한 새로운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개편 이전에 학업을 이수한 학생들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개편된 교육제도에 의하면 교등교육기관은 전문학교, 대학예과, 대학이 있었다. 전문학교와 대학예과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마련된 것으로, 중등학교 4년을 졸업한 학생이 전문학교와 대학예과를 거쳐 대학으로 진학하도록 만든 조처였다. 이러한 제도에 의해 2개 학부와 5개 학과 외에 병설한 것이 전문부였다. 전문부는 6개월 과정으로 설립되었다. 개교와 더불어 전문부를 병설하고, 학생을 모집하였다. 전문부에는 정치학과와 법률학과의 2개 학과를 두었다. 전문부는 2부로 나누어 수업하였다. 제1부는 낙원동 교사에서, 제2부는 이화동에 있는 배영학관에서 수업을 받았다. 1948년 6월 25일 제1회 전문부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전문부 제1회 졸업식에 백범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백범은 단국대학이 설립된 직후인 1948년 1월 내수동에 있는 범정의 집을 방문하여, 단국대학의 개교를 축하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백범은 범정의 집에 모여 있던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화하였다. > '''단국대학은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대학이며, 학생들은 우리 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라. 첫째도 나라사랑, 둘째도 나라사랑, 셋째도 나라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며, 범정 아우의 애국애족하는 기풍이 단국대 학생들에게 넘칠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 -------- > - [[백범 김구]], 『범정언행록』 단국인회, 1986, 156쪽. 1949년 7월 16일 제2회 졸업식이 열렸다. 이때 졸업생 10명이 1949년 7월에 실시된 고등고시에 응하여 2명이 합격하였다. 전국에 합격한 인원이 모두 11명이었는데, 단국대학에서 2명이 합격한 것이었다. 전문부는 제2회 졸업생을 배출한 후 폐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