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한남동 교사 입주와 '단국대학 개교 10주년 기념식' ===== || [[파일:한남동 교사 전경 1957.jpg|width=100%]] || || {{{#ffffff '''한남동 교사 전경(1957)'''}}} || 1957년 6월 17일 드디어 한남동 신교사 입교식을 기점으로 한남동 시대의 장이 열렸다. 대학 설립 이래 10년의 긴 고난의 역사를 마치고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한 신캠퍼스로의 이전은 가슴벅찬 일이었다. 1957년 6월 17일 오전 11시 법정학관 앞 교정에서 열린 입교식은 박정숙 교주, 장형 이사장, 윤택중 학장을 비롯한 전체 교수·직원과 장경근 내무부장관, 황성수 의원 등 40여 명의 내빈과 4천 명의 남녀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며 뒤로는 나만의 푸른 녹음을 등진 서울캠퍼스는 드높은 6월의 하늘 아래 대학의 밝은 장래를 약속하듯 이날따라 화창한 햇빛으로 빛났다. 이날 기념사에서 박정숙 교주는 “나의 선친 의 유지를 받들어 장 이사장의 주야불휴로 성 심분투하신 보람이 오늘 이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장형 이사장은 “단군의 개국정신을 본받아 우리 자력으로 훌 륭한 학교를 이륙하자”고 하였다. 윤택중 학장 은 “건물을 하얗게 칠한 뜻은 첫째 백두산의 굳건한 의미요, 둘째 백의민족의 상징이요, 셋째 우리의 마음을 청렴 결백히 하자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 이로써 단국대학으로 비약적 발전의 터전이 마련되었고, 명실공히 학문연구와 진리탐구의 아카데미가 그 주춧돌을 한남동 숲속에 다지게 된 것이었다. 한남동 교사 이전 완료 5개월 후인 1957년 11월 3일 ‘단국대학 개교 1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한남동 교사 대학본부 앞 광장에서 대학 관계자와 내빈, 전체 교수,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김익진 사무처장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은 단국대학 부속 백남고등학교 취주악대 주악으로 시작되었다. 안승렴 교무처장의 연혁과 현황보고가 있었고, 윤택중 학장의 기념사, 장형 이사장의 회고사, 최규남 문교부장관, 조동식 동덕여자대학장, 이희승 서울대학 교 문리과대학장, 배상명 상명여고교장, 주기용 오산학교장 및 김익준 등의 축사가 있었다. 학생대표 정종문 학생위원장의 축사, 박정숙 교주 및 장형 이사장에의 감사장 및 기념품 증정에 이어 10년 근속자 및 공로자, 1년 개근 표창장 수여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어서 기념식장에서는 고 조희재 여사 10주 기 추모식도 함께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개교 10주년은 파란에 가득 찬 역사였다. 뚜렷한 지표를 세우고 어려운 길을 헤치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장의 이정표를 밟아 온 짧고도 긴 세월이었다. 개교 10주년을 맞으며『단대학보』(1957년 11월 3일자)는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저 영국의 옥스퍼드나 캠브리지가 그 권위와 전통을 세계에 자랑하는 역사를 이룩하기까지는 수세기의 장시일을 소요하였다. 우리 대학의 역사도 과거보다 내일에 있거니와 벌써 현재에도 교시의 반영으로 학생 간에 남다른 ‘자주’·‘자립정신’과 ‘성실’·‘근면’의 기풍이 양성되어 감을 감득할 수 있다. 앞으로 진일보하여 이 기풍이 확고부동한 전통으로서의 발전과 아울러 새 세대 의 야심적 진취의 기상이 가미 조화되어 타의 추종을 허치 않는 경지에 이른다면 이는 확실히 하나의 손색없는 학풍으로서 전승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 > - 『단대학보』 1957년 11월 3일자 || [[파일:단국대로고w.jpg|width=40%]] || || {{{#ffffff '''죽전캠퍼스 이전까지 쓰였던 옛 교표'''}}}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