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대학원 설치와 연속강좌제 운영 ===== 1957년 6월 신당동에서 한남동으로 교사를 이전하면서, 장형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운영진은 창학이념의 발전적인 구현을 위하여 대학원 설치에 노력을 기울였다. 대학교육은 대학원 중심이 될 것임을 예지하고, 대학원을 설치하여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 겠다는 운영진의 노력과 시대관이 반영된 것이 었다. 1957년 12월 11일자로 문교부에「대학원인 가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이듬해 재차 인가신 청서를 제출하여 1958년 8월 29일에 문교부 로부터 「단국대학에 대학원 설치의 건」을 인가 받아 대학원을 설치하게 되었다. 대학원 석사 과정 3개 학과(법률학과, 정치학과, 국문학과)에 총 정원 30명 인가를 받았다. 대학원 설립인가 직후에 대학 당국에서는 학생 모집, 교수 초빙 등 개원 준비를 서둘렀다. 1958년 10월 14일에 초대 대학원장으로 장기영 교수(전 체신부장관,한국일보 사주)가 임명되고, 같은 달 25일에 강당에서 대학원 개원식 겸 제1회 대학원 신입생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1960년 8월 10일 제2대 김기석 대학원장이 취임하였다. 1961년 4월 3일부터 각계에서 저명한 강사를 초빙하여 연속강좌제를 실시하였 다. 한 강좌를 계속 강의한 다음 시험을 보아 학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 학기 동안에 실시할 강의를 단시일 내에 끝낼 수 있게 한 제도였다. 1961학년도 1학기에 실시한 강좌명과 강사는 형법에 유기천 교수, 국제법에 박종성 교수, 철학에 박종홍 교수, 서양사에 조의설 교수, 불교학에 이종익 교수 등이었다. 그러나 대학원은 불행하게도 1961년 9월부터 1966년 2월까지 군사정부에 의하여 주간부가 폐지되는 비운을 겪었다. 타의에 의한 대학원의 폐지는 설립자 범정의 건학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 후 운영진 의 부단한 노력으로 대학원의 재설치를 서둘러 1966년 2월 25일자로 다시 문교부의 인가를 받아 석사과 정 7개 학과에 총 정원 35명으로 다시 출범하게 되었다. 이처럼 대학원은 1958년 첫 걸음을 시작하여 일시 폐지된 시기도 있었지만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양적·질적으로 성장 발전을 지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