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종합대학 승격인가 내용과 절차 ===== 1967년 2월 10일 단국대학 역사상 또 하나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대학이 창립된 지 20여 년 동안의 숙원이었던 종합대학교로의 승격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기쁨은 취임 이후 약 2개월에 걸쳐 굳건한 의지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해 낸 장 학장의 개가였다. 여기에 이사진과 동창, 재학생들의 열망과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무회의로부터 종합대학교 승격이 허락된 이틀 후에 맞게 된1967년 새해 아침, 장충식 학장은 새해 소감에서 "해방 후 최초의 민족대학이란 자부심과 설립자인 혜당과 범정의 창학 정신을 이어받아 종합대학교로의 운영에 이바지할 것"을 피력하였다. 이날 종합대학교 승격이 성사되도록 장 학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던 박정숙 이사장도 연두사에서 "앞으로 종합대학교로서의 내실을 기하고 헌신적으로 이끌어 나가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1967년 3월 13일 단국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장충식이 취임하였다. 장충식 총장은 취임식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 "지금까지의 행적과 앞으로의 방향을 뚜렷하게 판단하는 것이 전환기에 가져야 할 바른 태도라고 봅니다. 본 대학은 지금까지 발전을 위한 길고 견디기 어려운 준비를 지내왔으며 지금의 전환점을 시점으로 하여 비약적 발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 중대한 출발점에서 관계자 여러분의 뜨거운 격려와 절대적인 협조 없이는 총장이 맡은 직분을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br] 그 동안 누적되어 온 많은 일이 있습니다. 교수와 직원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우문제, 대학의 질적 향상, 교사와 부속 연구실·실험실 등의 확충,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연구·후생·복지시설, 이외 같이 신설하고 개선해야 할 일들을 앞으로 관계자와 연구 검토하여 가급적 최단 시일 내에 완수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제들은 본인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또한 근시안적인 안목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 -------- > - 장충식, 『단국대학교 60년사』 상, 163~164쪽. 종합대학 승격 후에 대학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교명을 바꾸자는 주장이 있었다. '한남'[* [[한남충|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 했다]]... 이후 대전에 실제로 [[한남대학교]]가 생겨나긴 했다.], '남강(南江)', '남강(南崗)' 등 구체적인 이름까지 제시하면서 논의를 하려 하였다. 장충식 총장은 창설 당시의 이념 등 깊은 뜻을 가지고 고난을 이겨온 전통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교명을 고수하면서 내실을 기함으로 대학발전을 계속하자는 뜻으로 설득하여 결국 '단국대학교'로 교명을 그대로 유지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