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 활동 ===== 장형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로 약칭)는 1919년 4월 11월 중국 상해에서 수립되었다.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아 환국할 때까지 민족의 대표기구로, 또 독립운동의 최고기관 역할을 하며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국내와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장형 선생은 직접 임시정부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임시정부와 일정한 연계를 맺고 활동하였다. 장형 선생이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고 활동하였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로 확인된다. 첫째는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것이다. 많은 인사들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지만, 이것이 자료로 확인된 예는 많지 않다. 극히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활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장형 선생의 독립운동자금 제공에 대해서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승학(金承學)이 『의열사(義烈士) 및 독립운동자약전(獨立運動者略傳)』을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해 놓았다. > 일명(一名) 세담(世淡)이며, 호는 범정(梵亭), 용천인(龍川人)으로 1909년부터 양기탁·유동설 등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고, 1919년에는 이극·안창하·이신산·전덕명 등의 동지에게 군자금을 조달하였고, 전덕원·오동진·[[오광선]] 등에게도 군자금을 전달하다가 수차 투옥되었으며, 현금과 패물 등을 수집하여 송병조 목사를 통하여 임시정부 이시영에게 전달하였다. > -------- > - 김승학, 『한국독립사』, 독립문화사, 1967, 712쪽. 위의 자료에서 장형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지원하는 활동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양기탁·유동열·이진산·전덕원·오동진·[[오광선]] 등은 서간도지역에서 의성단·대한통의부·대한광복군총영 등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지도자들이었다. 장형 선생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서간도 지역에만 그치지 않았다.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임시정부에도 자금을 제공하였다. 그 방법은 송병조를 통해 이시영에게 전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송병조는 같은 고향인 용천 출신이다. 그리고 이시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주역의 한 사람이고, 임시정부에서는 재무총장을 맡고 있었다.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활동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1921년 9월 임시정부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회의에 제출한 「한국인민치태평양회의서(韓國人民致太平洋會議書)」에 국내 단체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서명한 것이다. 이 회의는 미국 주도하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이 참가하여 해군군비축소와 아울러 태평양 및 극동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1921년 11월 11일부터 1922년 2월 6일까지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임시정부는 태평양회의에서 한국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질 것이라 전망하고, 이를 한국의 독립을 요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임시정부에서는 임시의정원 의장 홍진을 간사장으로 한 대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를 조직하고, 태평양회의에 대해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외교후원회는 태평양회의에 임시정부 대표를 파견하여 한국독립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한다는 것과 이를 위한 자금모집, 그리고 각국에 한국독립을 위한 선전활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외교후원회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승만]]과 [[서재필]]을 대표로 선정하는 한편, 국내의 인사들에게 태평양회의에 제출할 청원서를 작성하도록 요청하였다. 요청을 받은 국내의 인사들은 「한국인민치태평양회의서」란 이름의 청원서를 작성하고, 1921년 9월 각 사회단체와 지역 대표자 372명의 서명을 받아 임시정부에 보냈다. 이 청원서는 대표인 이승만과 서재필에게 전달되었고, 이들은 태평양회의 의장인 미국무장관 휴스를 방문하여 이를 제출하였다. 장형 선생은 태평양회의에 제출한 청원서에 '반도고학회(半島苦學會)' 대표로 서명하였다. 서명자는 각 단체대표 101명과 각 지역대표 271명 등 모두 372명이었다. 지역대표는 전국의 각 도·부·군 단위로 이루어졌고, 단체는 기독교·불교·대종교 등 종교단체와 대동단·청년외교단·애국부인회 등이 참여하였다. 단체 대표로 참여한 인사들은 고종의 아들 [[의친왕]](황족대표)과 [[김윤식(조선)|김윤식]](귀족대표)을 비로하여 [[박영효]](유민회), [[이상재]](국민공회), [[허헌]](변호사) 등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