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군릉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logimg.hani.co.kr/71030_39514.jpg|width=100%]]}}}|| ||<:> {{{#000,#ddd 북한이 개축하기 이전의 단군릉. 사진에서 보다시피 '단군릉' 석비를 제외하면 그 형태는 피라미드와 거리가 먼,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흙 봉분 무덤이다.[* 사진에 보이는 단군릉 비석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세웠다고 한다. 단군릉(檀君陵)이란 명칭을 앞면에는 [[한자]]로, 뒷면에는 [[한글]]로 새겼다.]}}} || 본래 [[평양]] 근교에 있는 '단군릉'이란 무덤의 명칭은 역사적으로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박은식]]의 한국통사 등에 등장하며, 단군의 무덤으로 인식한 역사 자체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는 숙종(1697), 영조(1739), 정조(1786), 순종(1909) 시기 강동의 단군묘 수리 및 제사를 지시한 기사가 등장한다.[* 일부 [[환빠|민족주의 계열 유사역사학자]]들의 경우 실제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고학적인 접근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위 역사서에 나온 피상적인 기록만으로 '북한에 있는 것은 단군릉이 맞다. 사료에 있지 않느냐. 이를 부정하는 것은 식민사학이다'라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무덤이 실제로 [[단군]]의 무덤인지는 과거에도 현재도 확인된 바 없으며, 어디까지나 당대에도 그렇게 전해져 내려올 뿐이었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이러한 단군릉의 존재에 부정적이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유물론]]적 역사관 때문으로, 당시 북한에서는 실재하는 증거가 없고 어디까지나 신화와 종교의 대상에 불과한 단군의 무덤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김일성이 본격적으로 신처럼 우상화되고 [[주체 사상]]이 확립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일단은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답게 "봉건 사가나 [[부르주아]] [[민족주의]] 사가에 의해 실재한 고대국가나 인물인 것처럼 과장되었다."하면서 단군이라는 인물 자체를 부정하거나,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그 시대에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 정도로만 보았다.] 물론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처럼 단군릉을 파헤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실제 고조선의 왕릉이라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3년]], 북한은 대대적인 발굴 조사를 단행했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 무덤이 진짜 단군릉이라고 주장하며 그 가치를 드높이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대리석으로 [[피라미드]]형 무덤을 조성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자기들의 기호에 맞게 개건확장한 후, [[1994년]]에 위와 같은 모습으로 공개한 것이다. 발굴 조사 당시 무덤에서 인골이 수습되었는데 북한 측에서는 이를 단군의 유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